▲사그작 사그작, 바지락 바지락. 호미와 바지락이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속삭이듯 들려온다.
류창현 포토 디렉터
육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바다의 벌판, 세상은 고요하다. '사그작 사그작', '바지락 바지락'. 호미와 바지락이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속삭이듯 들려온다. 이른 아침부터 바다에 나간 어머니의 망태기가 어느덧 두둑이 채워져 간다. '고맙다, 먹고살게 해줘서.' 진흙투성이가 된 주름진 얼굴에 말간 미소가 번진다.
영흥도는 섬이다. 육지와 다리로 이어져 쉬이 다다를 수 있어도, 섬은 섬이다. 그 시절 섬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연안부두에서 배 타고 큰 시곗바늘이 한 바퀴는 돌아야 닿을 수 있었다. 섬은 풍요로웠다. 멀리 나가지 않고 바닷가에서 그물만 던져도 농어며 광어, 우럭 등 온갖 바다의 산물이 척척 걸려들었다.
영흥도 사람들은 평생 그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살았다. 갯것도 지천이었다. 물때만 맞으면 새벽이고 밤이고 바다로 나가 호미질을 했다. 허리가 굽고 주름살 패도록, 차디찬 바닷바람 맞으며 갯벌에 뒤엉켜 살았다.
바다가 그저 내어주는 먹거리가 아니다. 바지락은 모래와 자갈, 개흙이 뒤섞인 서해안 일대, 인천에서는 영흥도에서 많이 나고 자란다.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고된 성장 과정을 거친 후에야 바다의 풍미를 꽉 채운다. 모진 바람과 햇살, 물살을 받아들이고 견뎌낼수록 그 맛이 깊어진다. 영흥도에서 나는 바지락은 크기는 작아도 살이 꽉 차 있고 단맛이 나며 탱글탱글한 식감이 살아 있다. 그러니 멀리 바다 건너 일본 사람들 밥상에까지 척척 올랐으리라.
바다와 섬에 다리가 놓이고, 발전소가 세워지고, 뭍사람이 밀려들었다. 바람, 물결, 조석이 바뀌면서 갯벌이 사라져간다. 호미 하나 들고 자식들 키워내던 시절은 끝났다. 그런데도 섬사람들은 바다와 맞닿아 살아갈 것이다. 자연에 빚지며 살아가는 것을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며.
집에서도 즐기는 '백년' 섬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