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아무개 학생 편지마을학교 숙제 검사 하면서.
이상자, 정아무개 학생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은 언젠가 필연처럼 찾아오는 것이 인생인 것을 누가 모르랴!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내가 그 상황이 되니 갯벌에 빠져 점점 깊이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발처럼 무겁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수업은 코로나19 기간을 빼면 벌써 4년째였다. 교과서를 모두 끝내고 수업을 종료해도 서운한데, 인원수 부족으로 중단하게 되니 더욱 심란하다. 아마 어르신들도 주 2회씩 공부하던 것을 중도에 그만두게 되면 나보다 더 허전하고 섭섭할 것이다. 수업은 중단하더라도 그분들이 좋아했던 과제를 만들어 심심할(외로울) 때 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모두 뒤로 미루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르신 학생들이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던 공부는 그림 도안에 색칠한 후 그림의 내용에 어울리는 글짓기였다. 그 모습이 머리에 둥실거려 더 예쁘고 멋진 그림 도안을 찾느라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글짓기 할 곳에 정성 들여 선 긋는 작업도 했다. 인원수에 맞게 프린트해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80이 훌쩍 넘은 연세임에도 농사일에 노인 일자리까지 하면서 공부했던 학생들에게 일일이 손 편지를 썼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애쓰셨다고.
이 어르신 학생들은 가족들과 함께 살던 넓은 집에 지금은 덩그러니 혼자 살고 있다. 외롭고 쓸쓸할 때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럴 때 그림 그리고 글짓기하면 그 순간만은 쓸쓸함 잊고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평소 했던 과제 준비를 한 것이다.
"훌륭하십니다, 존경스러워요" 진심을 담아 전한 말
다과 준비를 해 갈까 하다가 하루 수업이 더 남았으니 마지막 날 하기로 하고 손 편지와 과제 만든 것을 들고 수업하러 갔다. 선생도 학생도 표정이 밝지 않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소대로 수업했다. 끝날 무렵 만들어 온 그림 도안과 손 편지를 나누어 드리며 말했다.
"수업이 종료되면 얼마 동안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 보시라고 한 달 치 넘는 숙제를 만들었습니다. 시간 나실 때, 또 잠 안 오실 때 하셔요. 그리고 그동안 일하며 공부하느라 애쓰셨다고 존경하는 마음 듬뿍 담아 손 편지 한 장씩 써넣었어요.
농사일도 바쁘신데 공부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부할 때는 알겠는데 문 열고 신발 신는 순간 다 잊어버려서 모른다 하셨지요? 그렇지만 여러분! 콩나물 키워보셨잖아요. 콩나물 키울 때 물을 주면 어때요? 물 주는 즉시 쑥 빠져나가도 콩나물은 자라듯, 여러분 자신도 모르는 새 많이 성장했습니다.
이제 그림도 잘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어느 정도 글로 쓸 수 있게 되었지요? 여러분 연세에 자모음부터 배워 이만큼 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장하십니다. 칭찬 드려요. 항상 말씀드리지만, 맞춤법 몇 개 틀리는 것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할 수 있으면 되니까요.
80이 넘으신 분들이 일주일에 이틀, 그것도 하루 두 시간씩 공부해서 여러분만큼 하실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아주 훌륭하십니다. 존경스러워요. 6학년 과정만 남았는데 이 과정을 끝마쳐 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합니다. 이제 공부할 날이 하루 남았네요. 오늘은 교재 11권의 '열대야'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다음 시간은 6단원의 삼국시대 나라 중 '백제와 고구려'라는 나라를 배울 겁니다."
이 어르신들, 내 생전 잊지 못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