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3일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서울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열린 대체역 심사위원 임명 및 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체역 심사위원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 기간을 현행 36개월에서 27개월로 단축하고 복무 분야 확대를 골자로 한 개선안을 낸 것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대체역 심사위가 개선안을 병무청에 전달한 것은 지난 4월 28일이다. 최근 1기 심사위원회 임기 종료 시점에서 나온 인터뷰 기사 때문에 개선안이 나온 지 두어 달 지난 뒤에야 새삼 이슈가 된 것이다. 그동안 대체복무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무척 반가운 일이다.
복무기간 단축이나 복무영역 확대와 같은 이야기는 대체복무제 도입 전부터 꾸준하게 이야기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인 2017년 7월 4개 시민단체(전쟁없는세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가 함께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역할을 했던 국정자문위에 제출한 시민사회 제안서나 헌법재판소의 병역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직후인 2018년 7월 19일 5개 시민단체(전쟁없는세상,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군인권센터)가 발표한 대체복무제 시민사회안은 복무기간이 군복무에 비해 과도하게 길면 안 된다는 점과 복무 분야가 공적인 영역에서 다양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체복무제도가 시작된 2020년 10월 이후에도 이러한 지적은 꾸준히 이어졌다. 국제사회도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 개선을 요구했는데 특히 지난 1월 발표된 4차 유엔 국가별인권정례검토(UPR)의 권고에서 여러 나라가 복무기간 단축(캐나다, 파나마, 호주, 크로아티아 등)과 복무 분야 확대(캐나다, 크로아티아 등)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이 밖에도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가 제공되어야 하고, 대체복무제가 총체적으로 차별적이거나 처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권고가 담겼다).
과거부터 이야기된 것이라도 하더라도 이번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대체역법에 명시된 권한과 책임에 따라 대체복무를 신청한 병역거부자를 심사하고, 대체역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조사 및 제안을 수행해야 하는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요구사항들이 인권 기준을 바탕으로 예상 가능한 우려와 먼저 이 제도를 시행한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만든 안이라면,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그에 더해 실제로 제도를 운용해 본 결과를 바탕으로 만든 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 기준이 지켜지지 않아 실제로 발생한 인권침해와 문제점들을 포괄하고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번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심사 과정과 대체복무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대체복무제도 개선의 쟁점들
대체역 심사위 개선안은 크게 ▲ 대체역 복무 기간을 줄이는 것 ▲ 복무 분야를 확대하는 것 ▲ 합숙 복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명시적으로 대체복무제의 기간을 정해놓은 기준은 없다. 다만 유엔자유권위원회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긴 경우 그에 합당하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가 발표한 대체복무가 군복무보다 2배나 긴 36개월이어야 하는 이유는 전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정부는 ▲ 공중보건의사 등 다른 대체복무자(34~36개월)의 복무기간 ▲ 병역기피수단으로의 악용 가능성 ▲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결정 근거로 제시했다.
현역 군인과 형평성을 맞추려 했다면 출퇴근 복무를 하며 높은 급여를 받는 공중보건의가 아니라 대체복무요원과 똑같은 급여를 받는 육군 현역 군인(18개월 복무)과 기간을 맞춰야 했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이용될 거라는 우려는 실제 3년을 운영해 본 결과 지나친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3년 동안 대체복무를 신청해 심사 절차가 마무리된 2986명 중 기각 결정이 난 사람은 6명밖에 되지 않고, 대부분 심사를 통과했다.
대체복무를 신청한 이들의 숫자나 심사를 통과한 이들의 숫자가 과거 병역거부를 하고 수감된 이들의 숫자와 대동소이한 것을 보면 걱정해야 할 것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도하게 징벌적이어서 병역거부자들이 이를 선택하지 못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당할 가능성이다.
그리고 당시 2배의 복무기간 대답률이 가장 높았다는 여론조사 또한 소수자 인권을 여론조사로 결정한다는 근본적인 비판점 외에도, 대체복무와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고 이 제도와 전혀 상관없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다는 점 등 부실한 근거였다.
대체역 심사위에서 개선안으로 낸 27개월은 기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겨우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최소한이다. 명시적인 대체복무 기간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유엔 자유권위원회나 유럽의회 등 국제기구에서는 현역 군인 복무기간보다 1.5배가 넘는 경우는 인권침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27개월 대체복무는 국제사회의 비난과 권고를 피하기 위한 최소치일 뿐이다.
도입 효과 누리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