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학교 학생 작품집 뒤표지80대 마을 학교 학생 작품집 학생들의 작품으로 만든 뒷표지 모습
이상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평생 글 몰라 주눅 들어 산 이분들의 자존감을 높여 드리고자 함이다. 어르신들에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느끼게 해 어깨 한번 쭉 펴고 살게 하고 싶었다. 거기에 더해, 이 분들이 책 속에 본인 작품이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남편의 불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 작업을 끝내 한 사람씩 작품을 모아 가방에 넣고 이름을 붙여 놓았다.
책 모양을 갖춰야 하니 마을의 최고 어른인 노인회장님께 발간사를 부탁했다. 이장님에게 축사를 부탁하니 사양해 여자노인회장님, 마을학교 반장님께 축하 글을 부탁드린 뒤 수정해 실었다. 분류해 놓은 작품, 목차 정리, 제호, 발간사, 축사, 앞표지 그림, 뒤표지 그림 순서 등을 일목요연하게 작성해서 클리어 파일에 담아 인쇄소에 맡기러 갔다.
책의 제호는 내가 지었지만, 제호 글씨를 부탁했더니 또 10만 원~20만 원 비용을 별도로 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잘 쓰진 못하지만, 비용 절감을 위해 내가 캘리그래피로 쓰겠다고 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책이 출간됐다. 이 책을 그냥 나누어 드릴 수는 없었다. 어르신들에겐 팔십 평생 처음 만든 책인데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했다.
그림과 시화 작품을 전시하려고 도서관에서 이젤 한 박스를 빌리기로 했다. 현수막 준비(이장님, 평생학습과), 두드림 기타 봉사단, 시 낭송가, 노래봉사자를 섭외했다. 이 분들을 초대하는 것도 사실 살짝 부담이었는데, 80대 어르신들을 축하해 주는 일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모두 기꺼이 자원봉사로 와 주겠다고 했다.
마을 학교 교사인 힘 없는 내가 주관자와 주최자가 되어 출판 기념회를 하려고 하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왜 어려운 일을 사서 고생하느냐'고 하는 주변사람도 몇 있었지만, 한 귀로 흘려들었다. 아마 이건 어르신들에게 평생에 한 번 있는 일일테니까.
동네잔치였던 출판기념회
결론? 이 봉사자들 덕분에 멋진 출판기념회를 할 수 있었다. 거의 동네잔치나 마찬가지였다. 동네 부녀회장이 음식도 마련해 주셨다. 이 장면을 영상에 담으려고 스마트 폰 삼각대까지 샀지만, 영상에 담지 못했다. 영상 찍을 것을 한 사람에게 부탁했는데 실수로 못 찍었단다. 혼자 진행하고 사회까지 하다 보니 제대로 챙기질 못했다. 그래서 참석한 여러 사람 사진을 취합해 만든 영상이었다.
지난해 했던 출판기념회, 수업종료를 며칠 앞둔 오늘 그 당시 영상을 어르신들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서 노트북을 챙긴 것이다.
첫 번째 수업 시간이 끝나기 10분 전, TV에 노트북을 연결하고 출판기념회 영상을 보았다. 영상에 흐르는 음악은 '꽃밭에 앉아서'라는 제목의 경음악이다. 영상을 보며 보는 내내 최아무개 학생이 가장 많이 눈물을 흘렸다.
"와아! 와아! 이렇게 무지렁이들에게 책까지 만들어 주셨는데..."
책은 받을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영상 속에 최아무개 학생의 얼굴은 없었다. 영상을 찍던 출간기념회 날이 오일장과 겹치면서 최 학생은 돈을 벌러 갔었기 때문이다.
"그날 장에 돈 벌러 가지 말 걸. 누가 이렇게 끝날 줄 알았어야지."
이어진 한 할머니의 말에 모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졸업식도 멋지게 해 주신다고 했었는디... 다 틀렸네유."
한동안 교실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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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이밖에 웰다잉강의,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북텔링 수업, 우리동네 이야기 강의를 초,중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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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종료 3일 전, 어르신들 '인생책' 영상 보며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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