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31일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10명이 국회에 첫 발을 내딛었다.
노회찬재단
- 노회찬 의원은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으로 나아간 첫 세대이고, 그 진보정당을 대중화해 원내 진출까지 성공시킨 첫 세대라고 본다.
"노 의원은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만들고, 그 정당을 대중에 뿌리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집권을 위해서 평생을 살았다. 앉으나 서나 집권을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 사람이다. 일부에서는 철딱서니 없는 얘기라든가, 너무 성급한 얘기라고 했는데, 진보정당 창당은 노 의원이 한 일이고, 집권은 노 의원이 하려고 한 일이었다. 정치인으로서 노 의원은 성공적이었는데 노 의원이 키우려고 했던 집권 주체인 정당은 과연 성공했는가? 이것은 다르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좌지우지할 문제는 아니지만 어쨌든 그 정당은 지금까지만 보면 객관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2008년 분당되고(민주노동당), 2012년 다시 분당되고(통합진보당), 지금의 정의당은 세 번째 위기 상황이다. 당을 그만두니 마니 쪼개니 마니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지 않나? 노 의원 본인이 가장 가슴 아파할 부분이다. 당이 커야 하고, 정당 리더십을 키워야 한다. 개개인의 리더십이 크다고 자동으로 정당 리더십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10명의 국회의원(민주노동당)이 있었던 2004년에 이미 증명됐다. 개별 의원들 중에 크게 잘못한 사람은 없었지만, 정당으로서는 전국 단위 투표에서 2004년에 얻은 13.1%를 한 번도 상회한 적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뿌리내리는 게 어렵다는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왜 어려운가? 1992년 민중당이 선거에서 실패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해체하자, 앞으로 전망이 없다고 하고, 빨리 당을 새로 만들자는 사람도 있었다. 노 의원은 진정추 시절에 당을 해체하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당장 당을 만드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민중당이 왜 실패한지를 봐야 한다고 했다. 노 의원은 정파, 노동자 조직의 공식 지지가 없는 점, 선거법과 같은 제도의 문제 등 세 가지를 지적했다(그는 201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그런 지적이 유효하다고 봤다).
그 세 가지 문제가 풀려서 1997년 권영길 후보가 대선 후보가 됐고, 정파들이 다 연합했고, 대중조직(민주노총 등)의 지지를 받아서 2000년 민노당 창당까지 갔다. 당을 만들자마자 선거제도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해서 성공했다. 이런 것을 만들어 놨는데 분당하니까(민주노동당) 노 의원은 자기 프로젝트가 다 끝났다고 했다. 그래서 2012년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모였는데 다시 또 분당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 생존의 어려움, 분단, 강한 보수성 등을 따질 게 아니라, 내적역량의 문제, 리더십의 문제다.
노 의원도 2010년대 진보정의당에서 정의당으로 갈 때 당의 이름을 사민당(사회민주당)으로 바꾸고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자고 했던 데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당 안에 있는 엔엘(NL, 자주파)과 피디(PD, 평등파)에다 유시민의 국참당(국민참여당) 계열까지 와서 진보 다원성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최소한 합의할 수 있는 강령적 측면이 사민주의라고 했는데 그것이 안 됐다. 아쉬운 대목이다.
이런 통합적 리더십이 당 안에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실패한 것이다. 정의당에서 유시민, 천호선 등 국참당 계열 인사들이 대부분 나가고 정의당에 젊은 여성 정치인들이 새롭게 들어왔는데 이들이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여성주의 가치들이 당에 들어왔으면 당 안에서 통합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한국 사회가 분단돼 있는 한 엔엘과 피디의 갈등은 있을 수밖에 없다. 태극기부대가 미국 국기 성조기 들고 시위하는 것도 분단과 연관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 구조다. 당 안에 분단, 자본, 젠더 등과 관련된 그룹들이 있고, 그 안에서 통합 리더십이 발휘돼야 하는데 구심이 없어졌다. 구심은 개인도 개인이지만 당을 구심으로 삼아야 원심력이 많이 발휘된다.
정파 중심이라는데 모든 정당에 정파는 있다. 정파 입장에서 보면, 선거에서 자기 정파 사람들 찍어주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의 입장에서 보면 정파의 이해 관계와 다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경선이었다. 특정 정파가 박홍 신부와 연결된 비디오를 만들어서 '노회찬은 주사파 때려잡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것은 노선의 문제가 아니다. 대선을 통해서 2008년으로 도약해야 하는 시점에 정파 이익을 앞세운 것이다.
2012년도 마찬가지였다. 제 정파들이 다 자기 정파 이익을 앞세웠으니 부정 선거가 나온 것이다. 엔엘만 부정 선거했나? 그건 아니었다. (각 정파들이) 전국에서 똑같은 짓을 했다. 정당의 리더십을 세우고, 당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킬 것은 지켜야 했는데 그것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노 의원은 굉장히 쓸쓸하고 고독했을 것이다."
-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없었다면, 다시 모였던 통합진보당의 분당이 없었다면 지금 진보정당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꿈꾸기가 어렵다.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다시 정파들을 중심으로 공학적 이합집산을 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국민들을 살리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은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당을 살리려고 노력해 봤자 효과가 없다. 일상에서 국민을 걱정하는 정당이 돼야 하는데 선거를 앞두고 당을 걱정하는 정당을 어떤 국민이 걱정해주겠나?
이 얘기는 노 의원이 (민주노동당) 분당할 때 했던 얘기와 맥락이 같다. 그때 권영길 후보를 선거 패배의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노 의원이 공식적으로 얘기한 것은 '이것은 4년의 성과인데 왜 후보 요인으로 가느냐, 2004년에 예고편을 보고 지지했던 국민들이 4년 동안 본편을 본 후에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다. 정의당도 지금까지 한 것에 대한 평가인데 선거를 앞두고 이리저리 이합집산하면 어느 국민이 그 진정성을 알아주겠나? '지들 살려고 저러는 거지, 니네들이 우리를 살리려고 한 적 있어?' 노 의원이 '국민 살리려고 정치하지 않고 팔자 고치려고 정치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 노회찬 의원이 살아있었더라면 그에게 물어봤을 질문인데, 무엇이 현재 진보정당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고 보나?
"노 의원의 대답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대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전에 한 얘기가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일상에서 국민을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 축적된 것이다. 물론 정의당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노력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에게는 정치적으로 그렇게 안 보였으니까 그 결과에는 책임져야 한다. 노 의원은 강한 정당은 지지를 많이 받는 정당이지 노선이 선명한 정당이 아니라고 했다. 민족주의든 페미니즘이든 노선이 선명하지 않아서 안 된 게 아니다. 지지를 못 받았다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못 얻었다는 것이고,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를 몰랐다는 것이다."
- 진보정당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17대 국회 개원 첫날인 2004년 5월 31일 10명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함께 국회의사당에 들어서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이런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아쉬움이 크다.
"내가 노 의원의 입장으로 돌아간다면 '그런 일을 다시 볼 수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 그러나 그 일은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진보정당들이 자기 혁신과 쇄신의 노력을 하고, 그것을 공동 실천해가면서 길게 봐서 할 일이다'라고 얘기했을 것 같다. 정의당 재창당 얘기가 나오지만 재창당 얘기는 2008년 진보신당 때부터 계속한 얘기다. 당시 노 의원도 '진보통합이 필요하지만 이대로 합쳐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헤어질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그런 부분들(헤어진 이유)을 어느 정도 줄이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과정 없이는 무망하고 의미가 없다'고 얘기했다."
- 생전에 노회찬도 진보정당 위기의 원인으로 '진보정당의 분열과 무능'을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
"맞다. 정치는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민노당 초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열성을 가지고 했지만 지금은 일할 만한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그런 시대는 역사로는 기억하지만 잊어야 한다. 2004년에는(헌법소원 심판 청구로 얻어낸) 1인 2표제라는 제도가 상호작용했고, 민주노총과 전농의 확실한 조직적 지지가 있었고, 정파들이 연합했다. 새로운 시대에는 어떤 과제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노 의원이 살아 있어도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공유할 수 있는 공집합을 끄집어내서 정치적 힘으로 만들어 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사실 노 의원도 진보정당 안에서 이것을 제대로 못 했다. 진보정당에서 통합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대단히 어렵구나 싶다. 노 의원이 팔로우십(followship)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진보정당에서도 리더들을 살려주고 세워주는 일이 필요한데 지나치게 흔들고, 명망가라는 것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본다. 돈으로 딴 명망도 아니고 대중투쟁을 하거나 대중과 함께해서 대중한테 얻은 명망인데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가? 노 의원은 명망이라는 단어 하나로 유명한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본다. 집권의 주체는 당이고, 당도 사람이 하고, 정파가 하지만, 이해관계에서 정당을 우선에 둬야 한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렇게 안 해서 두 번(민노당과 통합진보당 분당)이나 분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