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글살이의 등대 <한글새소식>을 33년간 가꿔온 성기지 주간퇴임을 며칠 앞두고 최근 편집한 <한글새소식> 610호(6월호)를 들고 우리말 큰사전 원고함 앞에 선 성기지 주간
김슬옹
- 한글학회는 어떻게 근무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근무했는지, 주로 어떤 일을 해왔는지?
"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사회에 나와 얻은 첫 직장은 작은 잡지사였습니다. 디자인 전문 잡지사 기자로 2년 정도 일하고 있을 때, 우연한 기회에 한글학회 출판부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보다는 학창 시절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다 한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희망이 있었는데, 마침 한글학회라면 국어학 관련 공부를 하면서 일할 수 있는 일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글학회에는 1990년 1월에 입사하여 한 달 동안의 수습 기간을 거쳐 2월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리의도 출판․연구부장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주로 출판부 업무와 연구부 업무를 도왔습니다. 출판 쪽으로는 정기간행물인 월간 <한글새소식> 발간, 계간 학술지 <한글> 발간, 연간 학술지인 <문학한글>, <교육한글>, <한힌샘 주시경 연구> 발간 등이 주 업무였습니다.
몇 년 뒤부터는 <문학한글>, <교육한글>, <한힌샘 주시경 연구>들이 차례로 폐간되고, 월간 <한글새소식>과 계간 학술지 <한글>만 펴내게 되었습니다. 연구 쪽으로는 1995년 4월부터 학회 연구실 책임연구원으로 임명되어 해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던 연구 발표 대회와 학술대회 등을 챙겨 왔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을 하며 오늘까지 만 33년 6개월 동안 학회에 몸담아 오다가 정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성 주간은 근무 초기의 흥미로운 뒷얘기도 덧붙였다. 1990년 1월, 그 전까지의 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1993년 폐지됨)로 나뉘었을 때에, 공병우(1907~1995년) 선생님이 이어령(1934~2022년) 초대 문화부 장관에게 공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 편지가 "한글의 발전에 더 힘써 주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한글 새소식' 제210호(1990. 2. 5.)에 실렸는데, 바로 성 주간이 한글학회에 출근하여 가장 먼저 읽고 교정을 본 첫 글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 한글학회에 근무하면서 우리 말글살이에 관한 많은 질문을 받았을 텐데, 주로 어떤 내용들이 많았는지?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한글 맞춤법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학회에 근무하며 우리 말글살이에 관한 질문을 받다 보면 뜻밖에도 말과 글에 대한 오해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이 우리말을 적기 위해 고안된 글자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글 자체가 우리말인 것은 아니지요.
'우리말'(한국어)은 우리 민족의 형성과 연륜을 함께한 민족어이고, 한글은 우리말을 표기할 마땅한 문자가 없어 중국글자(한자)를 오랜 세월 빌려 쓰다가 세종대에 이르러 비로소 고안해 낸 문자 체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말은 음성 체계인 데 비하여 글자는 시각적인 부호 체계입니다. 그 차이에 대한 오해로 여러 혼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요.
아무래도 어문 규범을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한글 맞춤법은 우리말(한국어)을 우리 글자(한글)로 적는 이치를 말합니다. 한글 맞춤법 총칙 제1항의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에서, '어법'은 의미 파악이 쉽도록 의미를 담당하는 부분의 형태를 고정하여 적는, 곧 체언과 조사, 용언의 어간과 어미를 구별하여 적는 것을 말하는데, 이 이치를 정확하게 알고 나면 많은 의문점이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아야 하는 말과 글을 구별조차 아니하고, 영어 문법 공부의 100분의 1만 투자해서 공부하면 되는 맞춤법 기본 원리를 공부하지 않고 자꾸 어렵다고만 해서 되겠느냐는 말도 살짝 덧붙였다.
50여 년을 이어온 <한글새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