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성매매 업소로 이용되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다도공간이다.
한림미디어랩 The H
성매매촌으로 알려진 강원 원주 학성동 희매촌 골목 입구에 도예 작업과 수업은 물론, 다도를 즐길 수도 있는 공간이 있어 눈길을 끈다. 10여 년 전 도예 활동을 시작한 신구경(55·여)씨의 작업 공간이다.
"학성동 골목길에서 목격한 삶의 흔적이 너무 아프게 다가와" 이처럼 뜻밖의 장소에서 3년째 문화예술 공간을 운영중이라는 신씨. 희매촌 골목에서 도예 문화를 빚어내고 있는 그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 봤다.
불법 성매매업소 사들여 예술공간 만들다
신씨와 희매촌의 연을 맺어준 도예 활동은, 십여 년 전 쯤 우울증을 앓는 지인에 "흙을 만져보라"고 추천을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신씨 자신도 직접 해보게 되면서부터다. 그렇게 우연히 접하게 된 도예 활동에서 신씨는 "사는 게 바빠 놓친 것 같던 정체성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흙을 만지니 천지가 개벽되고 살아 숨쉬는 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한 뒤 원주 문막읍에 도예 작업실을 마련하고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했다. 현재는 민족미술인협회 원주지부의 지부장을 맡고 있다.
처음 신씨가 희매촌 골목을 알게 된 건 지난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였다. 예술인 일자리 창출과 주민들의 예술문화 향유 증진 등을 목적으로 진행된 사업에 신씨는 "낡은 골목을 예쁘게 꾸미고 상권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참가했지만, 실제로 목격하게 된 골목의 현실은 처참했다.
초저녁만 되면 홍등가 불이 밝혀지는 희매촌은 1950년대 판자촌을 떠올리게 하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곳에서 미술활동을 한다는 것이 참 난감한 일이었다. 7명의 작가들과 '입주 예술회'를 결성하고 작가활동을 시작한 뒤, 대낮에도 술에 취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아가씨를 찾고 심지어는 미성년자들까지 늦은 시간 희매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
원주에 약 35년간 거주하며 이 인근에서 불법 성매매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골목에 들어와 피부로 느낀 실태는 참담했다. 골목 안쪽 슬레이트 지붕 건물들의 잔해를 모두 걷어내니 50년대 목조주택들이 주를 이루었고, 그 안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거주하던 쪽방이 나오기도 했다.
"단순히 심미성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 작가의 역할이 아니잖아요. 이 낡은 거리에서도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내 생각을 세상에 보여주고 표현해, 아름다운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게 작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매매촌이 형성되던 시절, 혹은 그 이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골목 안에 묻어 있고 그 아픈 이야기들을 채취할 수 있었던 신씨의 말에는 아팠던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예술인의 정신이 느껴졌다.
실제로, 도시재생사업이 끝난 뒤 인근 성매매 업주들이 빈 점포를 매입, 다시 업소를 운영하려 한다는 소식에 신씨는 그 점포를 사비로 사들여 작업 공간으로 꾸미고 지역 어린이들의 미술수업과 주민들의 소통공간으로 리모델링 했다. 작업활동에 필요한 공간 마련과 자재 비용을 지원받기도 어려워 대부분 신씨 개인이 부담한다. 최근에는 원주시 여성협회 활동을 시작, 희매촌 인근의 방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당당하고 강한 예술인들의 가교 역할 기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