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과 함께 한 문일민(앞줄 첫 번째)
문일민 후손 제공
독립운동 선양으로 보낸 말년
그러나 말년의 문일민은 현실 정치보다는 독립운동 선양 활동에 주력했던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몸담았던 흥사단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애국동지원호회·광복동지회·독립동지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의 간부로 활동한 것이다.
1956년 애국동지원호회장 문일민의 이름으로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는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을 정리해둔 책으로 이후 정부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서훈할 때 주요 참고문헌으로 활용됐다.
또 함께 싸운 동지들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인우 보증에 나서는 등 동지들의 선양을 위해 힘썼다. 1962년 3월에는 김창숙, 김승학, 이강 등과 함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앞으로 백범 김구 선생 시해 사건의 진상 규명과 범인 안두희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1964년 독립운동가 이강 서거 당시 고 오산 이강 선생 사회장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으나 이후 공식 석상에서 문일민의 활동은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후손들의 증언에 의하면 말년의 문일민은 중풍을 심하게 앓는 바람에 자리 보전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1968년 10월 17일 투병 끝에 문일민이 눈을 감았다. 향년 75세였다. 장례는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러졌다. 10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영락교회에서 국무총리 정일권을 비롯한 200여명의 시민과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경직 목사의 집례로 영결식이 치러졌다. 그런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21년 전 그가 중앙청 할복 의거를 결행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