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조교님과 최 학생마을학교 수업 중인 모습.
이상자
그런데 이 마을학교에 배려하는 것을 일상으로 하고 있는 마음씨 고운 정○○ 학생이 있다. 난 그 학생을 '정 조교님'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조교님이다.
마을학교 학생 중에 오일장 날이면 장사를 하러 다니는 최○○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공부하는 날이 장날과 같은 날이면 으레 결석한다. 그것도 두 지역에서 장날마다 장사하므로 수업 날짜랑 두 군데 오일장이 겹칠 때가 많다. 당연히 공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 최 학생이 요즘 장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당연히 진도를 따라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진도를 못 따라오는 학생까지 이끌고 가려면 자연 수업이 지연되고 진도도 더딜 수밖에 없다. 이 최 학생을 정 조교님이 옆에 앉혀 놓고 하나하나 가르쳐 주며 수업하고 있다. 나는 정 조교님 덕분에 원활한 수업을 할 수 있어 참 좋다. 또 최 학생은 모른 채 지나갈 수도 있는 부분을 정 조교님 덕분에 알고 지나가니 더없이 좋은 것이다.
정 조교님 덕분에 최 학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정 조교님은 88세 연세라서 귀찮을 수도 있고 당신 공부 따라하기도 힘들 터인데 공부하는 날이면 의무인 것처럼 86세 최 학생을 가르친다. 아름다운 정 조교님과 열정 넘치는 학생들이 있어 매 수업이 즐겁다.
정 조교님은 혼자 살면서 하우스에 꽈리고추를 심어 판매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고추를 수확하면 박스 포장을 한다. 이 작업도 손수 척척 해낸다. 공부하는 날이면 새벽부터 고추 하우스에서 고추를 따 박스에 포장해 놓는다. 수업 시간이 오후 1시 30분~3시 30분이고, 꽈리고추는 3시에 농협 차가 실어 가기 때문이다.
공부가 얼마나 하고 싶으면 새벽부터 일해놓고 수업에 참석하겠는가. 88세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일어나 농사일 하고, 시간을 내어 공부한다는 것이 여간한 정신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정 조교님은 그렇게 바쁜 중에도 틈을 내어 그림도 그린다. 그림도 얼마나 잘 그리는지 놀랍다. 물론 그림 도안에 색칠하고 그림에 어울리게 글쓰기 하는 것은 날마다 숙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스케치를 직접 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리기 수업은 못 한다. 그런데 정 조교님은 오로지 그림 도안에 색칠해 본 경험으로 스케치북에 혼자 스케치해서 그린 그림이 상상 초월이다. 잠이 안 올 때에도 그림을 그린다고. 그러고도 새벽에 일찍 일어나 그날 해야 할 고추 작업을 끝낸다고 한다.
이렇게 새벽부터 농사일 해 놓고 마을학교에 와서 공부하려면 힘든 것은 불 보듯 뻔한데. 최 학생이 공부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당신 옆에다 앉히고 최 학생이 모르는 것을 차근차근 가르쳐 주고 있다.
어떤 모임에 갔을 때 일이다. 자기를 보고 '똥도 버릴 것 없는 여자'라고 칭찬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이 정 조교님이야말로 똥도 버릴 것 없는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