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두희응징비와 남궁경 선생안두희응징비를 세운 후, 비석 옆에 선 남궁경 선생
조선동
궁금증을 안고 비석을 세운 사람, 남궁경씨를 수소문해 찾아나섰다. 2023년 6월 4일, 심산김창숙선생기념사업회 홍소연 실장과 함께 만난 남궁경씨는 홍천에서 나고 자랐고, 지금은 원주에서 '남궁약방'을 운영하고 있다.
- 양구에 곽태영 선생의 의거를 기념하는 비를 세우셨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세우신 거예요?
"그렇게 위대한 분(김구)을, 강제로, 의자에 앉아계신 걸 쏴버렸으니, 그런 억울한 비극이 어디 있어? 그냥 우리 아버지 죽인 그런 느낌이야. 괘씸하기가 말로 할 수 없는 거지.
그런데 그게(안두희가) 감옥에서 나와서 거기서 군납공장을 해서, 거기 사단장들이 일요일이면 포인터 개를 끌고 나와가지고, 뻘건 모자 쓰고 총 메고 같이 꿩 잡고 이런 이야기를 듣고... 그러다 곽태영씨가 의거했다는 그 소식을 듣고 나니,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야. 알고 보니까 나랑 한동갑이야.
그래서 어떻게? 내가 가서 후원할 수도 없고, 후원할 돈도 없고, 갈 수도 없고. 그냥 매스컴 듣고 그런 거지, 그 안타까움이 쌓이고 쌓여서 저게(안두희 응징비) 나온 거지, 뭐."
- 양구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까, 이 비석을 수레로 옮기셨다고 돼 있던데요. 이걸 어떻게 옮겼나요?
"그때 기자들이 수레로 달구지로 가져왔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어떻게 수레로만 옮겨? 무게가 1톤도 넘는데, 그때 춘천에서 도매로 약 파는 회사가 있었는데, 그때는 약이 많이 팔릴 때지. 춘천에서 홍천까지 약 배달하는 차가 있었는데, 그 차한테 부탁했지. 그랬더니 가는 길에 내려다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차로 끝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 나중에는 수레로 달구지로 옮기고 그랬지."
- 돌은 어떻게 구하셨어요?
"홍천 북방면, 두 밭 사이 밭고랑에 저 돌이 있었어. 돌이 반들반들한 게 아주 특이해. 아주 먼 옛날에 고인돌로 쓰인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돌이 아주 마음에 들어. 저 돌이 두 밭의 경계에 있으니까, 밭 주인들이 서로 이쪽으로 넘기고 저쪽으로 넘기고 그래. 그래서 내가 가서 부탁을 했지, 내가 저 돌을 가져가도 좋겠냐고? 그랬더니 양쪽 사람 모두, 아유 어서 가져가라, 그래. 그래서 저 돌을 구했지."
- 비석을 세우려면 땅 주인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잖아요, 그건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거기 홍주범 선생이라고, 도청의 과장급이었는데 부자야. 안두희 집터가 그이 거였는데, 그 땅을 안두희한테 팔고, 안두희는 나중에 군청에다 그 땅을 팔았다고 하더라고, 비석을 세운다고 하니까 그이가 '세워도 된다' 그러기에 나는 그이만 믿고 아무 걱정 안 하고 터억 세운 거지.
그런데 거기도 그 비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거기 교육장이 그 비석을 싫어했어. 교육장 관사를 지을 때, 그게(안두희 응징비) 바로 그 앞에 있었어. 어느 날 전화가 왔는데, 그게 없어졌다는 거야? 그래서 가보니까 그 관사 뒤에다 엎어놓았잖아?
그래서 내가 교육장한테 따졌지, 그랬더니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하더니,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나중에는 좀 강하게 뭐라 했지. 나중에 양구의 김영진, 그이가 공원을 꾸며서 거기에 그걸(안두희 응징비) 잘 옮겨놓았더라고. 누가 뭐라고 해도, 김영진 그이가 최고의 공로자야."
"지나친 충성은 스스로 역적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