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과 식탁은 내게 여전히 고역스러운 일 공간이다.
정승주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이 사건을 나중에 전해 들은 아내는 나를 '가사 열등생'으로 규정했다. 성격이 급한 편인 아내는 나에게 수저 놓고 반찬 꺼내고 하는 단순한 일만 시켰다. 조금이라도 기술(?)이 요하는 일은 가르쳐주다 입만 아프다며 시키지 않았다.
아내는 자신은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고 나는 가계를 꾸려갈 수입을 책임지니 민주적이지 않냐며 스스로 합리화했다. 문제는 정년퇴직 이후에도 무임승차가 가능하냐는 거다. 당연히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도 않다. 아내는 정년도 없이 매일매일 가사를 홀로 감당해 왔는데 나는 놀면서 돕지 않는다? 상상하기 어렵다.
하여 나는 아내를 도와야 한다는 의지 충만으로 요구하기도 전에 가사 분담을 자청했다. 비록 집안일에 서툴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솔선수범에 나섰다. 우선 커피와 빵으로 하는 아침 식사를 맡았고, 빨래 널기와 개기를 전담했다.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는 일은 여전히 아내 담당이다. 울 옷감은 물 온도를 맞춰야 하고, 어떤 옷은 다른 옷과 섞지 말아야 하는 등 복잡해서다. 화장실을 포함한 청소도 맡았다. 아내가 대견해했고 일상이 순조로워졌다.
나는 기술을 요하는 일로 점차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더뎠다. 딸기잼을 매끈하게 바르지 못해 지적받고, 롤빵 포장지를 잘못 벗겨 부드러운 빵 껍질이 너덜거리게 하는 등 매일매일 소소하게 아내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다. 자신이 없다 보니 모든 걸 묻게 되고, 더불어 아내의 짜증 데시벨은 높아갔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가사 분담을 하고 있는데, 마음을 몰라주다니... 나에 대한 사랑이 식었나 싶은 것이다.
그러다 해결책을 찾았다. 나 스스로 생활 열등생임을 인정하고 선언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라고. 당신은 생활의 달인으로 전문가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쉽게 하는 일을 몇 배나 어렵게 한다고, 같은 잣대로 재는 건 불공평하다고, 그래서 더 이상의 일은 내 능력을 넘어서기에 할 수 없다고. 아내는 예상 밖에도 쿨하게 받아줬다.
요즈음 나는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산다. 생협 활동가인 아내의 발표 자료나 자잘한 원고 작성을 간간이 도와주고 있어서다. 아내가 아쉬운 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또 있다. 은근히 겁이 많아 여전히 장롱면허로 있는 아내는 나의 포로다. 승용차로 어디라도 가려면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다. 가사 초보자로 살아도 끄떡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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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와 산책을 좋아하며, 세상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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