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1소형차 1대 세우기에도 벅차 보이는 골목.
이영천
하지만 아사 직전 철거민은 정반대다. 강제 이주자 1/3은 딱지를 팔고 서울로 되돌아간 상태였고, 2/3도 딱지 매각 후 대단지 주변 하급지에 무허가 주택을 짓고 거주하고 있었다.
소설 속 안동 권씨는 불법 전매로 딱지를 산 경우다. 당시 거금인 20만 원을 들여 20평 땅을 매입한다. 이런 안동 권씨들이 부지기수였고, 이는 항거의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1970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딱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 7월이 되자 서울시는 부랴부랴 '분양증 전매 금지와 전매입주자는 분양증 매입 시세로, 철거민은 조성원가로 분양지를 매입'해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듬해 대선(4월)과 총선(5월)이 있어 방침은 시행되지 못한다.
1971년 선거철에 박정희 오른팔 차지철이 이곳 후보로 나선다. 그는 '토지무상양여, 5년간 면세'라는 현실성 없는 공약으로 땅값 상승을 부채질한다. 설상가상 대선 때 남발된 개발계획이 투기 광풍을 일으킨다. 선거자금이 유입되어 유동성이 확대되고 투기꾼이 바람을 잡자 땅값은 또 올라간다.
양대 선거가 끝나자 유동성이 바닥을 보이고, 단물 빼먹은 투기꾼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러자 땅값이 곤두박질친다. 비상이 걸린 서울시는, 비용 회수와 투기 규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낼 생각을 한다. 1970년 방침을 전격 단행한다. 이에 특히 전매입주자가 타격을 받는다. 20만 원을 들여 딱지를 샀던 이들이, 급지(級地)에 따라 평당 8000∼1만6000원을 추가 부담해야 할 처지로 내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