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주인공 기택(송강호)의 집은 화장실 변기가 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형적인 형태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속의 다른 하나의 집은 박 사장(이선균)의 집이다. 넓은 잔디밭 마당과 그 마당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큰 창이 나 있는 넓고 쾌적한 거실. 2층에 있는 각자의 방들. 완전한 부르주아 가족의 프라이버시 공간. 기택의 가족은 박 사장 가족의 다른 어떤 재산도 아닌 '집'을 욕망하고 집착한다. <기생충>은 가난한 기택의 가족이 자신의 반지하 집에서부터 수직의 미로를 오르내리며 부르주아인 박 사장의 저택으로 침투해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문제의 광고 문구
다시 광고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지난주 또 하나의 아파트 광고 문구가 화제가 됐다. 화제라기보다는 사회의 공분을 샀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더 팰리스 73(The Palace 73)이라는 반포동 옛 쉐라톤 팰리스 호텔 자리에 세워지게 될 고급(하이엔드) 아파트 광고였다.
그런데 문제의 광고 문구를 천천히 뜯어보면 문장 자체가 어색하게 쓰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장은 굳이 타동사 '않은'을 사용하며 번거롭게 쓰였다. 이 문장이 효율적이고 자연스러우려면 "언제나 불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고 쓰였어야 한다.
하지만 이 광고의 문구를 쓴 카피라이터와 더 팰리스 73의 시행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태여 '불평등'이라는 말을 회피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문구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광고 문구는 왜 '불평등'이라는 말을 쓸 수 없었는가. '불평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욕망하는 것, 차별을 스스럼없이 염원하는 것, 사회적 관계로서 계급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사회에서 아직까지는 '금기'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평등'이라는 표현을 피했지만 불평등을 욕망하고 있는 광고 문구는 우연한 계기로 우리 사회에 계급 간 갈등을 다시 환기했다. 이 도발적인 광고는 SNS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언론에서도 대서특필 되었다.
광고에 대해 정도가 지나친 천박한 자본주의의 민낯이라며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시행사는 며칠 만에 문제가 된 광고를 삭제하고 부적절한 광고 문구에 대한 사과문을 게재했다. 퍽 자연스러운 귀결이지만 아직도 더 팰리스 73의 시행사와 광고를 만든 사람들의 진심이 궁금하다. '정말 불평등한 세상을 꿈꾸시나요?' 더 팰리스 73의 분양가는 120억~400억 원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