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적 자영업자를 불안하게 하는 계약 조건은 '짧은 계약 기간'이다. 통상 계약 기간은 1년이며,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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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사업, 대리점사업, 수위탁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일명 '종속적 자영업자'라고 한다. 명칭 그대로 거래 상대방인 기업에 계약으로 종속돼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들로서 우리가 동네에서 흔히 보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우유 등 제품 대리점, 제조사 브랜드를 간판으로 걸고 있는 카센터, 브랜드 학원과 그 학원을 모집하는 지역 지사들이 그렇다. 우리 일상엔 생각보다 많은 종속적 자영업자들이 관여하고 있다.
이쯤에서 이 기사를 읽는 독자는 서두의 전세사기 내용에 뜬금없이 이어지는 종속적 자영업자 설명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뜻 둘 사이엔 별다른 유사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 사이 공통점이 있다. 종속적 자영업자는 깡통 전세 세입자처럼 불안한 상황에 놓였다는 사실이다. 종속적 자영업자를 불안하게 하는 계약 조건은 '짧은 계약 기간'이다. 통상 계약 기간은 1년이며,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한다.
혹자는 '도대체 이게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계약 기간이 1년이든 10년이든 계약서를 읽었을 테니, 이미 알고 계약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일견 맞는 말이다.
바로 여기에 깡통 전세와 진짜 유사성이 있다. 깡통 전세에 들어간 사람 상당수는 그 전세 물건의 잠재적 위험 요소 즉, 계약 만료 후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있음을 알고도 계약한다. 이유는 그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 그리고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까'라는 확률적 기대 때문이다. 필자 또한 얼마 전까지 깡통 아파트에서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아 본 경험자였기에 그 심정을 잘 안다.
종속적 자영업자들 또한 사업을 위해 투자된 자신의 자본과 각고의 노력이 매년 재계약 시점에서 본사 의중에 따라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위험을 알고도 계약한다. 이유는 바로 위에서 서술했듯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과 설마 내게 그런 일이 있겠나라는 확률적 기대 심리'가 함께 작용한 결과다. 바로 이 부분이 깡통 전세에 들어간 세입자들과의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다.
'설마'가 현실이 되는 순간
영어 교육 프랜차이즈 H사의 지사장으로 있었던 A씨의 사례가 그랬다. 2021년 모 시사지를 통해 보도되기도 했던 이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A씨가 남편의 퇴직금 1억여 원을 투자해 열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한 결과, 해당 브랜드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단기간에 학원 가맹점을 늘렸다고 한다. 이 교육 프랜차이즈 또한 지사 계약 기간이 1년이었다. 업계의 관행적인 계약조항이었기에 A씨는 크게 염려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영업 중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4년을 잘 견뎠다.
그런데 2021년, 본사가 재계약 조건으로 말도 안 되는 교재 판매 목표량을 할당하며 조건부 재계약을 제시했다고 한다(A씨 말로는, 제시된 판매 기간도 상당히 짧았다고 한다). A씨는 이런 조건은 기업의 부당한 갑질이라 생각해 거부했다고 전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두 눈 딱 감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어요. 일단 이 위기만 넘기자는 생각이라면 그렇게 해야 했지만, 전 도저히 그렇게 못 하겠더라고요. 물론 이 조건을 받아들인 지사도 있었어요. 그럼 그 지사들은 목표를 달성했을까요? 그건 또 다른 거더라고요. 그때 그때 본사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일종의 길들이기 같은건데, 이건 정말 우월적 지위를 가진 기업의 횡포잖아요. 그래서 거부했어요. 그랬더니 (본사가) 재계약을 거부하더라고요."
이후 사장 A씨는 정부기관의 도움을 받아 민사 소송으로 본사의 횡포에 대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계약서에 계약 기간이 명시되고 해당 업종을 규율하는 관련 법에 '계약갱신 요구권'이 없다면서 본사의 재계약 거절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렇게 A씨는 금전적 손해는 물론 4년 여의 노력으로 일궈 놓은 영업 지역을 빼앗겼다. 그렇게 설마 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제가 한창 열정적으로 영업할 때 한 학원 원장님이 제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그분이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분은 이런 상황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프랜차이즈 학원 경력이 꽤 있던 분이었거든요."
'종' 만드는 계약?... "재계약 하려면 불공정한 조건 다 감수해야"
또 다른 영어 교육 프랜차이즈인 Y사 지사장인 B씨는, '1년이란 조건이 불안하긴 하지만, 상당수의 지사들은 재계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본사의 재계약 거부는 이 업계에서는 상당히 빈번한 일입니다. 처음 계약할 때는 온갖 감언이설로 유혹하다가 계약하고 나면 달라지죠. 1년 단위 재계약을 하려면 수수료 삭감 등 본사의 불공정한 조건을 다 감수해야 합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까지 오른 '쎈수학 가맹 지사 전원 계약해지' 사건은 물론, 모 영어 브랜드 지사장 사건의 경우는 한 명의 지사장이 세 번이나 계약갱신을 거절당하고 영업 지역을 빼앗긴 사례도 있습니다.
지사장들이 온갖 노력으로 불모지를 옥토로 만들면, 본사가 바로 빼앗아가는 거죠. 가맹사업법에는 가맹점주가 10년 동안 재계약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우리 같은 교육 사업 지사는 '가맹사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허점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