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농촌의 중심에는 바로 쌀이 있다.
참여사회
치솟는 물가, 떨어지는 쌀값
2022년 쌀값은 대폭락했다. 1979년 쌀의 완전 자급이 이루어지고 쌀 관련 통계가 작성된 뒤 가장 큰 폭락세이다. 농민들은 밥 한 공기에 300원을 요구하는데 올해는 한 공기에 205원까지 떨어졌다. 세상 모든 물가가 무섭게 오르는데 떨어지는 것은 쌀값뿐이었다. 농민들의 삶은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는 '쌀이 남아돌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쌀 자급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2019년 100%가 넘었던 쌀의 자급률은 2021년 84%, 2022년 82%까지 떨어졌다. 쌀 수입 개방 이후 들어온 수입쌀이 조금씩 시장 점유율을 높인 것이다. 즉, 쌀이 남아도는 것은 한국 쌀이 많이 생산되어서가 아니라 대량의 수입쌀이 들어와서 생긴 결과다.
쌀을 포함한 한국의 모든 농산물은 이미 개방되었고, 세계 평균 곡물자급률이 100%를 넘는 시대에 한국은 곡물자급률이 20.1%이다. 그나마 쌀을 대부분 자급하기에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곡물가가 폭등할 때도 국민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쌀이 남는다고 국민을 선동하고 "쌀값을 보장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단언한다.
특히 지금은 기후위기가 식량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벼는 20~29°C에 이삭이 나오고 곡식이 여무는데, 기온이 상승하면 벼가 안정적으로 자라지 못한다.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해 토지 염도가 올라가거나 가뭄과 폭우가 반복되는 것도 큰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2020년 56일간의 장마는 쌀 생산량을 급격히 감소시켰다. 같은 해 환경부가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 보고서'는 2100년 쌀 생산량이 지금보다 25%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식량 안보에 적신호가 켜질 수밖에 없다.
쌀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2022년 11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도시민의 63%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은 가치가 크다"고 응답했다. 또한 65.7%는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확대하기 위한 추가 세금 부담에 찬성한다"고 했다. 국민들은 농업·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농업·농촌의 중심에는 바로 쌀이 있다. 한국 농지의 절반 이상이 논이며, 농민의 51.6%가 쌀을 재배한다. 한국 농업은 지속적으로 축소되어 왔지만 그나마 쌀을 지키려 노력했기에 지금의 농지와 농민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쌀값은 농민 값이며 쌀값이 곧 농민에 대한 국가 처우의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쌀의 가치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 커지고 있다. 논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농촌진흥청이 펴낸 <논에 사는 무척추동물 도감>에 소개된 동물은 무려 280여 종에 이른다. 어떤 사람들은 "논이 물을 너무 많이 사용하고, 물이 잠긴 토양에서 세균이 메탄가스를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태적으로 보았을 때 논은 공익적 가치가 더 크다. 홍수를 조절하고 공기와 수질을 정화하고 토양 유실을 방지하고 유기물의 재순환을 돕고 여름철에는 주변을 시원하게 만드는 냉각 효과도 있다. 쌀농사는 쌀만이 아니라 생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것이다.
농민에게 31억 달러 내놓은 미국, 농민 외면하는 한국
농업을 시장경제에만 맡겨놓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최첨단 자본주의의 나라, 윤석열 정부가 '혈맹'이라고 말하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미국은 자국 농민들의 대출 및 보증 융자를 지원하고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31억 달러(4조 486억 원)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자연재해·전염병 등으로 인해 시장이 혼란해지면서 농민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번 지원은 국가 전체 복지에 필수적인 식량, 섬유, 연료의 지속적인 생산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국가 전체를 위해서 농업이 중요한 것이 미국만은 아닐 것이다. 쌀 소비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식생활의 중심에는 여전히 쌀밥이 있다. '쌀을 천대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어른들의 말은 결코 묵은 문자가 아니다. 쌀은 우리의 소중한 한 끼 밥상을 지키는 주식이며, 한국의 농촌을 지키고 환경을 지키는 소중한 작물이다.
'밥 한 공기 쌀값 300원 보장!' 농민들의 소박한 꿈이 올해는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1) 식량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제하고 농민들의 할당량만큼의 농산물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팔도록 한 제도
2) 쌀 소득 보전 직불제에서 쌀의 시장 가격이 변함에 따라 단위 면적당 지급하는 특정 금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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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찬밥 신세' 만드는 정치가 진짜 포퓰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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