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 처음, 어르신들 수업을 못 했다

꽃 여행 다녀온 뒤 코로나에 걸리다

등록 2023.05.30 08:45수정 2023.05.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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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여러 면 소재지에서 모인 '마을한글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씁니다. [기자말]
"선생님 얼마나 아프길래 수업을 못 오신대유?"


마을 학교 어르신 학생들이 전화가 왔다. 몸살 감기가 심해 몸이 많이 아프고 입이 다 헤져 물 삼키기도 어려워서라고 말했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만, 실제 여행 떠날 엄두는 못 내는 1인이다. 핑계를 대자면 어르신 수업하고 가끔 초.중학교에서 북텔링 수업과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시 낭송 수업을 해서다. 수업 준비도 있지만 그사이 비는 요일엔 취미 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 내기가 어렵다. 이러다 좋아하는 여행 한번 못해보고 늙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서울 사는 여동생에게 꽃 축제 투어를 하자고 제안했다. 동생은 흔쾌히 수락했다. 5년만의 여행. 설렜다. 첫 번째로 충남 태안군 코리아 플라워파크서 하는 세계튤립축제부터 시작했다.
 
태안세계튤립축제 태안세계튤립축제 에서 촬영
태안세계튤립축제태안세계튤립축제 에서 촬영이상자
 
4월 26일 튤립 꽃은 절정이었다. 꽃들이 얼마나 싱그럽게 피어있던지 입에서 '와! 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점심 먹는 것도 잊고 꽃에 흠뻑 취해 넋을 놓고 바라봤다.

분홍색, 빨간색,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하얀색, 튤립 꽃 천지다. 황홀 그 자체다. 사람의 일생으로 보면 18세 소년, 소녀처럼 어여뻤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끝없는 튤립의 향연 속에 파묻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핸드폰에 영상으로 담고 사진으로 담았다. 갑자기 스마트 폰이 캄캄해졌다.
 
태안 튤립축제 태안 세계 튤립 축제에서 촬영한 사진
태안 튤립축제태안 세계 튤립 축제에서 촬영한 사진이상자
 
태안 튤립축제 태안세계튤립 축제에서 촬영
태안 튤립축제태안세계튤립 축제에서 촬영이상자
 
'왜 이러지?' 아직 사진에 담을 꽃들이 많은데 핸드폰이 고장 난 걸까? 핸드폰을 껐다가 전원을 눌러도 소식이 없다. 충전할 곳을 찾아다니느라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간신히 간이 매장에서 충전기를 꽂아본 후에야 배터리가 다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고장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아름다운 꽃들을 사진에 담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더 아쉬운 것은 어느 매장에서도 충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한참 두리번거렸다. 플라워파크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건식 반신욕기> 홍보부스에서 충전을 할 수 있었다.


충전을 위해 요금 내고 체험했다. 따뜻해서 온몸의 피로가 풀렸다. 다시 꽃 사진 찍으러 갔다. 핸드폰에 200기가바이트 외장 메모리를 장착하고 오길 잘했다. 집에 오기 싫었다. 꽃을 두고 올 수가 없어 발이 떨어지지 않지만 돌아오기로 했다. 가슴가득 싱그러운 튤립향기 안고.

돌아오면서 5월 5일~7일 꽃 축제에 또 가기로 했다. 날씨 검색을 하니 비가 온다는 예보다. 그렇다면 다음에 갈까 하다가 <피나클랜드 튤립 축제> 5월 7일이 마지막이었다. 비 온대도 여행을 강행하기로 했다. 태안 튤립 꽃이 눈에 아른거려 미룰 수가 없었다. 미루면 내년에 가야 하니까. 대신 집에서 멀지 않은 충남권에서 꽃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첫날 부슬부슬 비 오는 거리를 달려 세계꽃식물원에 도착했다. 대 실망이다. 화려하고 아름답던 태안 튤립 꽃을 가슴에 한가득 담고 가서 아산세계꽃식물원을 둘러보니 꽃들은 더러 있었지만, 볼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싱거웠다. 거기 있는 꽃들에 미안할 정도로 내 얼굴이 실망으로 가득 찼다.

서운한 마음으로 둘러보며 아쉬운 대로 사진을 찍었다. 입장료는 받았지만 돌아갈 때 입장권 액수만큼 꽃을 가져갈 수 있어서 화분 세 개를 가져왔다. 꽃향기 퐁퐁 풍기는 차를 타고 재빨리 <피나클랜드>로 출발했다. 튤립 축제와 불꽃놀이를 기대하며 달렸다.

날씨는 가끔 비를 뿌렸지만, 차창 밖 풍경은 5월의 신록이 절경이다. 눈 호강으로 마음은 나비처럼 나풀댔다. 들뜬 마음으로 피나클랜드에 도착했다. 비가 와서 불꽃축제는 취소되었다고 했다. 튤립도 다 지고 없었다. 급 실망이다. 입장권을 샀다. 불꽃축제도 취소되고 튤립 축제에 튤립도 지고 없는데 입장료는 받았다.

피나클랜드 들어가는 입구는 정말 멋있었다. 외국에 온 느낌이 들었다. 비가 솔솔 뿌려서 우산을 펼쳐 들고 걸어갔다. 튤립축제는 7일까지였지만 튤립은 이파리만 무성했다. 공연도 취소되고, 볼거리라고는 산으로 나 있는 길과 초록빛의 나무들 뿐이다. 그래도 꽃을 보지 못해서 다시 오고 싶은 장소였다.

도고 역 근처 모텔에서 1박 했다. 세상에 모텔 서비스가 짱이다. 하얀 침대 시트와 하얀 이불, 거울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방. 쟁반 가득 수박, 바나나, 포도, 사과, 오렌지, 양말 두 켤레. 여동생과 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과일이 쟁반 가득인 것도 놀라운데 양말도 남녀 두 켤레나 서비스하다니.

아침이다. 일기예보는 오전에 날이 든다고 했으나 흐렸다가 비를 뿌렸다가 하는 날씨다. 일찍 일어나 외암리 민속마을로 향했다. 돌담길이 그윽하다.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따뜻해져 왔다. 내가 시골 길을 좋아해서 인가보다. 당진 천 크기 정도의 냇물이 흐르는 다리를 지나 외암리 민속마을로 들어서자, 현지 할머니들이 여러 가지 농산물을 팔고 계셨다.

"내가 직접 뜯어서 만든 쑥 개떡이니 사가유. 맛있어."

직접 쑥을 뜯어서 만들었다니 맛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해주시던 쑥 개떡 생각이 나서 얇고 동그랗게 빚은 초록빛의 쑥 개떡을 세 개 샀다. 마을엔 초가삼간 집, 중류층 집, 상류층 집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집안 곳곳 예전에 농사짓던 여러 가지 농기구들을 볼 수 있었다. 옛날에 김치를 보관하던 저장소를 처음 보았다. 짚을 엮어서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 눈 비를 막아주게 만든 것을 보니 조상들의 지혜를 알 수 있었다.
 
똥 장군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촬영
똥 장군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촬영이상자
 
원통형 오지 그릇 배 부분에 입구가 있는 그릇은 이름이 똥 장군이라고 했다. 똥 장군 자체 만으로도 오지그릇이라 무겁게 생겼는데 거기에다 똥 오줌을 담아 등에 지고 날랐다니 고생스러웠겠다.
 
옛날 남자 소변 통 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촬영
옛날 남자 소변 통외암리 민속마을에서 촬영이상자
 
옛날 김치 저장하는 곳 외암리 닌속마을에서 촬영
옛날 김치 저장하는 곳외암리 닌속마을에서 촬영이상자
 
이곳은 예전 농사짓던 기구와 물건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교육적 가치도 있어 외암리 마을 여행은 좋았다. 걷다보니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나무 타는 냄새가 솔솔 풍겨 저절로 발길이 머물러졌다. 그 집에서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밥 먹고 가. 옛날 반찬이여. 내가 꽃 모종도 줄게. 어서 들어와. 밥값은 오천 원이여".

할머니가 이끄는 대로 대청으로 들어갔다. 옛날 집 그대로였다. 나무로 된 마루에 교자상을 펴놓았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마루가 차디 찼다. 할머니가 벽에 걸린 사진을 보라며 자랑했다. 연예인들이 밥 먹고 간 사진 몇 장이 걸려있었다.

반찬은 10가지가 넘었으나 맛은 권할 만큼은 아니었다. 마당에 우물이 있는 집이고, 마늘을 많이 심어놓은 곳은 옛날엔 바깥마당으로 사용하던 곳 같았다. 할머니는 민박도 하니 자고 가도 된다고 했다. 이 외암리 마을은 옛집 그대로 민박 하는 집이 꽤 되었다.

꽃구경 하고 집에 돌아와 사흘이 지났다. 오슬오슬 춥더니 침을 삼킬 수 없이 목이 아팠다. 잠을 잘 수가 없게 배가 아팠다. 감기인 것 같아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 여덟 알이다. 약 때문인지, 몸살 때문인지 가슴부터 배의 통증 때문에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 날 다른 병원에 갔다. 열은 36.8도인데 코로나와 독감 검사를 동시에 했다. 결과가 나왔다. 아뿔싸! 코로나19 확진.

링거를 두 개 꽂았다. 그동안 코로나 안 걸리고 살았다. 학습자 어르신들 모두 코로나 확진됐을 때도 무사했다. 마스크도 해제됐는데 코로나19에 확진되었다니. 나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여행했고 밥 먹을 때만 마스크를 벗었다. 모든 일상이 멈췄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너무너무 아프다. 혀는 다 갈라지고 혓바늘이 돋았다. 입 천장은 껍질이 다 벗겨졌다. 물을 삼킬 수도 없다.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남편이 코로나 확진되었을 때도 나는 무사했다.

병실에서 링거 맞는 중에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일주일 격리' 통보다. 수업을 모두 연기해야 했다. 학교 수업은 연기했는데 어르신 수업이 문제다. 어르신들이 걱정할까 봐 사실을 알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반장님께 내일 수업은 아파서 못 간다고 학생들에게 전해 달라고 전화했다.

격리 해제가 되고 이틀 뒤 금요일 바나나 한 박스를 사 들고 수업하러 갔다. 코로나 때문에 수업을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8년 동안 한 번도 수업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럴 줄 알았슈. 선생님이 수업을 빠질 분이 아니어서 코로나 걸렸구나 생각했슈."
덧붙이는 글 브런치 스토리와 블로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마을한글학교 #코로나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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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이밖에 웰다잉강의,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북텔링 수업, 우리동네 이야기 강의를 초,중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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