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혼잡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강남대로 중앙 버스전용차로
박장식
밤 10시가 넘은 시각의 서울 도로는 한산하다. 앞선 저녁 시간에 꽉 막혔던 곳들도 어지간하면 밤 9시, 10시 후엔 길이 풀리기 시작한다. 이따금 사고나 갑작스러운 차량 증가로 정체가 발생하기는 하지만 평소에 비해 뻥 뚫린 길이 시원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밤 10시 이후엔 한산한 일반차로와 버스가 길게 늘어선 중앙 버스전용차로가 대비된다. 서울 강남대로 이야기다. 이곳은 유독 밤일수록 버스전용차로가 제 기능을 상실하는 이상한 장소가 되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강남대로 버스전용차로의 과밀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아예 밤이면 밤마다 버스가 옴짝달싹도 못 하고 갇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정거장 가는 데 30분도 더 걸려
지난 17일 밤 10시가 넘은 시각 서울 논현역 중앙 버스전용차로 정류장 앞 횡단보도. 시원스레 뚫려 쌩쌩 오가는 승용차들 사이로 웬 큼지막한 차 벽이 보인다. 차 벽의 정체는 시내버스다. 강남대로 중앙차로를 오가는 버스들이 다른 버스들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그대로 멈추어 서 있다.
이 차 벽, 생각보다 길다. 위로는 신사역에서부터 시작한 이 버스들의 행렬은 뱅뱅사거리 인근까지 3km 넘게 이어진다. 서울 시내버스부터 시작해 공항버스, 그리고 인천이나 경기도에서 강남을 오가는 광역버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논현역 정류장 후미에서 10시 5분경 들어온 시내버스를 타봤다. 목적지는 다음 정류장인 강남역 정류장. 거리는 650m 남짓, 걸어서 넉넉잡아 10분이면 간다. 하지만 버스는 정류장을 좀처럼 빠져나가지 못한다. 논현역 정류장 맨 앞에 버스가 신호대기로 멈춘 시각은 10시 10분이었다.
신호대기 이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해도 버스 반 대 정도의 길이밖에 차가 나아가질 못했다. 버스가 300m 남짓 거리의 신논현역사거리까지 가는 시간도 15분 넘게 걸렸다. 승객들은 답답하다. 몇몇은 체념한 듯한 얼굴로, 일부는 우왕좌왕하는 표정으로 버스 안팎을 바라봤다.
버스 기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버스 기사는 "두 정거장 가는 데 한 시간이 족히 걸린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기사는 "작년부터 이 현상이 점점 심해지더라. 낮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7시에서 8시만 넘어가면 광역버스 타는 사람들이며, 시내버스 타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는 통에 난리가 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