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지난 4월 26일 마포경찰서에서 음주운전 방지 장치를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상습 음주운전자에게 "자동차 열쇠를 아예 못 잡게"하는 것. 법정에서 질책과 함께 던진 판사의 생각은 사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전력자들의 음주운전 차단을 위한 입법은 무고한 생명이 음주 사고로 다치고 사망할 때마다 국회 논의 테이블 위를 수시로 오갔다.
상습 음주운전자나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자는 법안이나, 차량 몰수와 형량 강화 등 엄벌 기조의 법안들이 그것이다. 이 중 중점적으로 거론되어 온 대책은 '음주운전시동잠금장치'를 차량에 부착하는 법안이다.
술에 취한 운전자가 운전을 시도할 경우, 알코올 농도를 감지해 차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기술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처음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된 2009년부터 입법 논의만 10여 년째 이어지고 있다. 2013년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에서 200여 페이지 분량의 연구보고서를 내놓았을만큼, 논의가 시작된 지 오래다.
해외 성공 사례부터 관련 기술의 종류, 예상 가능한 한계와 관리 방안까지 제시돼 있다. 도로교통공단은 결론에서 "교통안전 수준을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무한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므로 적극 추진할 필요성과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2021년 11월 헌법재판소 또한 음주운전 재범 가중 처벌 조항 위헌 결정 당시 이 장치를 언급했다. 형벌 강화에도 반복되는 음주운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검토해 볼 만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당시 결정에서 "(음주운전 시 적발이 안 될 거라는) 낙관을 교정할 확실한 교정수단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 시동잠금장치 장착을 제시했다.
음주운전을 저지르기 전에, 먼저 차단하자는 방안은 국회 문턱을 줄곧 넘지 못했다. 20대 국회와 21대 국회를 통틀어 발의된 '닮은 꼴' 법안만 총 14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안은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21대 국회 들어서 총 9건의 법안이 발의됐다. 정치적 이견도 없다. 여야 의원들이 골고루 대표 발의에 참여했다. 대전 스쿨존에서 음주운전 가해자에 의해 사망한 고 배승아양의 사고 전후로도 여야 모두 비슷한 법안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쟁점 클수록 국회 역할 중요" 이번에는 입법 오를까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므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2017년 9월, 지난 20대 국회에 오른 음주시동잠금장치 법안들에 대한 행정안전위원회 검토보고서. 여전히 '국민 공감대 형성'을 언급했다. "긍정적 여론 조성 후 확대하는 단계적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2018년 11월 법안심사소위, '음주운전시동잠금장치' 관련 법안을 발의한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86년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시작한 이 장치는 대부분 미국의 다른 주에서 도입하고 있는데, 미국의 통계는 (기술 도입으로) 사망자 수가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전문가 의견으로는 장치 장착이 운전자에게 음주운전을 단념하게 하는 심리적 제동장치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최종 입법 심사는 불발됐다. 제도 안착을 위한 숙의가 더 필요하다는 신중론이었다.
21대 국회 때 발의된 관련 법안에 대한 행안위 검토보고서에는 '국민적 공감대'라는 표현이 또 등장한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0년 12월 발의한 관련 법안에 대한 의견으로, "전문가와 일반 국민 대상의 공청회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 본격적인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 대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다. 10년 전이나 현재나 변함없이 '찬성'이 과반을 넘는다. 앞서 언급한 2013년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 보고서에 인용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동잠금장치에 대해 응답자 589명 중 359명이 '필요하다'(61.9%)고 답했다.
찬성 비율은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났다. 경찰청이 2019년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시동잠금장치 관련 여론조사에서는 92.9%가 찬성 의견을 밝혔다. 국민권익위원회 2021년 조사에서는 2187명의 국민 중 95.1%가 '운전면허 정지 또는 취소 처분을 받은 음주운전자는 시동잠금장치를 일정 기간 장착해야 한다'는 안에 찬성했다.
걸림돌은 각론의 '디테일'에 있었다. 주로 언급되는 한계는 ▲방지장치 강제로 인한 기본권 침해 가능성 ▲생계 운전자 비용 부담 ▲운전면허 결격 기간에 따른 장착 시점 논란 ▲음주운전 이중처벌 가능성 등이다. 음주운전 범죄자들에게 장치 장착을 의무화할 것인지, 자발적 참여로 유도할 것인지도 오랜 토론거리다.
2021년 3월 이미 관련 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는 임호선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관련 법안을 이미 시행 중인 다른 나라들의 공통적 결론을 소개했다. 의무적이든, 자발적이든 "모든 상황에서 음주운전 재발률 감소에 대한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임 의원은 "참여 방식과 비용 문제를 놓고 여러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때문에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21대 국회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고, 쟁점이 큰 사항인 만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제도적 부작용 없이 안착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빠르게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범 삼범 반복되는 현실... "뭐라도 시작해달라"는 유가족들
전문가들은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한다. 2010년부터 시동잠금장치 등에 대한 연구를 이어 온 정신교 목포해양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고 나서 사람 다치고 죽는 피해보다, 그 비용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보조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일 수 있다"면서 시동잠금장치 입법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