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샤 베이츠 지음, 신소희 옮김, <상실의 언어> (심심, 2021)
심심
자유로워진 일상의 끔찍함
그 사이 우리 가족은 타지역으로 2박 3일 정도 가야 할 일정이 있었다. 늘 그랬듯 숙소 담당은 나였고, 나는 숙소 예약 앱을 켜고 우리 가족이 머물만한 곳을 찾았다. 그런데 검색 필터에 '반려동물 동반'을 제외하자(제외 버튼에 체크하는 것조차 울컥했다) 너무나 고급스런 숙소들이 리스트에 올라왔다. 우리는 은이와 함께라면 불가능했을 특급호텔을 예약했다.
하지만 이내 '끔찍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은이의 부재를 상기시켰다. 은이의 짐이 빠진 간소한 여행 가방이 야속하게 느껴졌고, 고속도로 휴게소 식당 안에서 편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나는 주로 은이와 함께 야외 좌석에서 식사를 했었다). 푹신한 호텔의 침대가 죄스럽게 느껴졌고, 은이와 함께 숙소 바닥에서 잘 때 느꼈던 그 온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일상에서도 그랬다. 일을 마치고 은이가 기다릴까 봐 총총거리며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었고, 은이의 식사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저녁 모임에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은이를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 자유가 어색하고 고통스러웠다.
베이츠 역시 똑같은 감정을 토로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신보다 깔끔하고 정리하기를 좋아했던 남편 빌을 떠올리며 이렇게 적었다.
나는 빌에게 신경 쓰지 않는 방법을 몰랐다. 그의 존재가 내게 너무나 선명히 새겨져 있어서 달리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92쪽)
이젠 무엇이든 어디에나 마음대로 늘어놓을 수 있었고 그 누구의 취향도 고려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 자유가 나를 짓눌렀다. (139쪽)
한바탕 눈물을 흘리며 읽은 구절들이지만, 내 경험을 설명할 명확한 언어를 얻은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관계는 계속된다
이런 고통 속에서 저자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그 방식이 나와 매우 유사했다. 먼저, 끊임없이 고인과 연결되려 한다는 점이었다. 베이츠는 남편의 장례식 날, 평소 남편이 즐겨하던 농담과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자 빌이 곁에 있다고 확신한다. 이후에도 빌에게 온 우편물들을 점검하면서, 빌이 준비한 연극 등에서 그의 존재를 느끼고 연결감을 찾으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은이의 짖는 소리에 반응하는 독 카메라의 알람이 울릴 때마다(아마도 카메라는 개 짖는 소리와 비슷한 주파수의 소리에 반응했겠지만) 나는 은이가 곁에 있다고 느꼈고, 우연히 흘린 사료 알갱이를 발견했을 때도 은이가 찾아 왔다고 믿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따스해져 왔다. '진짜든 아니든 간에, 이런 메시지들은 내게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254쪽)'는 베이츠의 경험은 내게도 진실이었다.
또 하나는 고인과의 시간을 의미 있게 기억할 방법을 찾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연극배우였던 남편 빌을 기리기 위해 배우 지망생 청소년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고, 이 일로부터 일상을 회복해 간다. 나도 그랬다. 나는 유기동물 보호소를 찾았고, 그럴 때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힘을 얻었다. 이런 것들을 통해 은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보다 의미있게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런 마음을 '지속적 유대 이론'으로 설명한다. '지속적 유대 이론'은 고인을 떠나 보내야 새로운 애착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전통적 애도 이론과 달리, 고인을 떠나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고인과의 관계 유지는 건전하고 정상적인 것이며, 이 관계 역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이는 떠난 이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그들의 뜻을 기리며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애써서 은이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연결감을 느끼면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그러고 나니 용기가 생겼다. 보호소 봉사, 후원, 임시보호, 입양 등 은이와의 관계를 이어가며 내 삶을 충만하게 할 방법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평화와 생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