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위에서 한 건을 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복잡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에 턱없이 짧을 뿐만 아니라 심의위원들의 전문성 부족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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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위는 학교 폭력에 대한 수십 년의 고민과 시행 착오를 담은 시스템이지만, 여전히 미완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크게 세 가지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사전 조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올라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학교에 조사 권한이 없는 데다 학부모들 눈치를 보느라 기본적인 사실 관계 조차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교사들의 이야기다.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주장이 엇갈릴 때는 더욱 개입하기가 쉽지 않다.
둘째, 학폭위도 인력이나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심의위원들은 학폭위 심의 30분~1시간 전에 자료를 받아볼 수 있다. 개인정보 누출 위험 등을 고려한 절차라고는 하지만, 학생의 운명이 걸려 있는 사건을 면밀하게 다루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폭력의 정도가 무겁거나 관련된 학생이 많은 사건은 자료만으로 진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불만도 많다.
셋째, 심의위원들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학폭위는 각 교육지원청(서울시교육청의 경우 11곳) 단위로 10~50명으로 구성된다. 관내 학부모를 3분의 1 이상 포함하는 것 외에는 별도 규정이 없다. 심의는 학폭위 산하 소위원회(소위)가 담당하는데 소위는 통상 5~10명으로 구성된다. 심의위원은 학부모와 교원(장학사), 법률가(변호사), 청소년전문가(상담사, 푸른나무재단 등 NGO 활동가 등) 등이 참여한다.
이해준은 "
학부모들은 사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일부 심사위원들은 피해 학생을 마치 가해 학생처럼 몰아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가톨릭대학교 교수 유금란 등의 연구에 참여한 한 초등학교 학폭위 위원들의 말이다.
애들이 충분히 자중하고 애들 스스로 갈등을 풀 수가 있는데, 학폭이란 법이 만들어지면서 애들이 스스로 갈등을 풀지 않고 조금만 불편해도 이런 게 있으니까 나는 이거를 이용해서 너를 뭐 할 거야 이런 식으로 자꾸 진행되고, 오히려 학폭위가 만들어지면서 아이들의 문제가 어른의 문제로 심각하게 번지고, 그게 결국은 법의 테두리까지도 하는 역할에 있어서, 학폭위 법 자체가 저는 싫어요.
교육청으로 넘어가는 거는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하세요. 선생님들이랑 아이들이랑 같이 사용하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선생님들이 빠지고 학교가 빠지면 이건 안되는 게 정말 맞거든요. 솔직히 이 학폭위부터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소열은 "막상 회의 일정이 잡히면 외부 전문가들은 일정 문제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학부모들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현장을 잘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지역 사회에 서로 인맥으로 얽혀 있다 보니 서로의 관계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가해 학생이 변호사를 동원하면 진실 공방으로 치닫게 된다. 가해자가 피해를 주장하거나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뭉개는 경우도 많다.
반성할 때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생 망치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방어하는 노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결국은 아이를 망치는 길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학폭 사건을 전담하는 한 로펌은 "학폭위에 변호사가 출석하는 건 위원들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이 로펌은 "학교 측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여 학교 측에 압박감을 미리 심어줌과 동시에 학폭위에서 한 아이의 부모로서 해당 학교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어떠한 심경을 느끼고 있는가를 어떻게 어필할까를 궁리해야 한다"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대원대학교 교수 김주한은 충북 지역 학폭위 위원 10명을 인터뷰한 연구에서 학폭위 시스템에 여러가지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음은 김주한이 인터뷰한 학폭위 위원들의 발언을 발췌한 것이다.
첫째, 30분 질의 응답으로 정확한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가.
심의가 진행 되는 동안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에게 자신의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게 됩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매우 엄숙해서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을 정확히 진술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요. 질문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해 학생의 경우 심의위원회 개최 이전에 질문의 내용을 알지 못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을 변호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가해학생의 진술이 심의 결과에 영향을 주게 되지만 적극적인 변호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가해 학생이 진심으로 반성하게 만들 수 있는가.
낙인이 찍히게 되는 가해학생은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른 사건의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처벌을 통하여 반성을 하는 하기보다는 더욱 적극적으로 학교 폭력을 일으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의 피해학생들이 가해학생과 함께 학교를 다니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가해학생의 전학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사안의 내용에 따라 가해학생을 전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셋째, 피해 학생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가해학생이 전학을 안가면 피해학생이 전학을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학을 간 피해학생도 새로운 학교의 환경에서 적응하는 것이 어렵기에 학교를 자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폭력업무를 담당하는 교사는 모두 기피하는 자리입니다. 열심히 해도 쉽게 예방 효과가 나올 수 없는 교육환경을 교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넷째, 폭력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가.
모든 것을 교사의 책임으로 몰아가기에는 교사의 능력이 한계가 있습니다. 과거처럼 교사를 존중하기 보다는 교사에게 대항하는 경우도 자주 있어 생활 지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김주한은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담임 교사가 질책을 당하는 동시에 1차 조사를 맡게 되기 때문에 큰 부담을 느끼게 된다"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폭력 사안에 대하여 선도 위주의 적극적인 교육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녀의 상처와 부모의 욕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