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나이 교외의 해변
Widerstand
이전 글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덕분에 남인도는 기독교의 역사도 깊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했을 때, 이 사실을 믿지 못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사도 토마스였죠. 토마스는 예수를 직접 보고서야 예수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예수는 그런 제자에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했다고 하죠.
성경에 따르면 이후 예수는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남은 제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토마스는 동쪽으로 향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동방으로 향한 토마스는 인도 첸나이에서 순교했습니다. 지금도 첸나이에는 토마스의 무덤 위에 지은 성당이 남아 있습니다.
덕분에 남부 지역에는 기독교 인구가 많은 곳이 꽤 있지요. 첸나이의 경우 기독교도 인구가 8% 정도이지만, 북부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성당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유럽 열강의 침략도 물론 북인도보다 빨랐습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무역을 통해 첸나이 지역에 정착했죠. 작은 어촌이었던 첸나이가 크게 성장한 것은, 영국 동인도회사가 건설한 영국인 거주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사실 남인도의 많은 도시들이 비슷한 역사를 겪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