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경남본부, 금속노조 경남지부, 투쟁하는노동자와함께하는 경남연대가 지난해 9월 1일 옥포조선소 서문 앞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가면서 “대우조선해양은 하청노동자와의 약속을 지켜라”고 촉구하는 모습.
윤성효
현재 조선소엔 가족과 떨어져 살 수 없는 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동자들만 남아 있는 듯하다. 일감은 늘어나고 사람은 부족하니 제대로 공정이 돌아가질 않는다.
일할 사람이 태부족이다. 정부에서는 외국인 채용만이 유일한 해법인 양 떠들어 대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조선소에서 기술도, 경력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적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주노동자들도 꿈을 깨고 육상으로 가거나 조선소보다 나은 곳으로 가기 일쑤다.
남아 있는 노동자들로 배를 지어야 하니 어떻게 되겠는가? 필연적으로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강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주52시간은커녕 온갖 불법과 탈법을 자행하게 된다. 심지어 임금이 한 달에 두 번, 세 번 입금되는 경우도 있단다.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임금 항목이 있는가 하면, 다른 명목으로 입금되기도 한다. 주52시간에 짜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다. '특별연장근로제'니 하면서 이것저것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거제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에서 발행한 '거제 지역 노동 동향과 조선소 노동자 근무 환경 개선 방안 모색'이라는 보고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동시간의 적정성과 노동시간 상한제 필요성에 관한 생각을 노동자들에게 물어봤는데, 노동시간이 적정하지 않고, 노동시간 상한을 두는 것에 대해 불만이라고 응답한 빈도수가 높게 나온다. 앞서 말한 조선소의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요즘 일감이 늘어나면서 잔업, 특근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B 코드(6시 퇴근)가 늘고, 토·일요일 특근도 늘어나는데 이를 두고 일부 하청 노동자는 좋다고 한다. 특히 도장 노동자의 경우에는 더 심각한데, '일 많이 시키는(?) 업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 하청 노동조합 투쟁을 통해 없었던 퇴직금과 연차휴가를 쟁취했지만, 그럼에도 그보다는 일 많이 하는 업체를 찾아서 노동자가 모이는 기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심지어는 노동조합을 탈퇴하면서까지 그런 업체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도장 직종에는 사내 하청업체와 사외 하청업체가 존재하는데, 사내 업체 중 조합원이 많은 경우에는 잔업과 특근을 배제하기도 하고, 물량을 조절해서 노동시간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사외 하청업체(아웃소싱)에는 물량과 노동시간을 최대화해서 임금 총액을 더 받게 하여 노동자 사이를 이간질하거나 차별을 만들어낸다. 다른 업종(용접, 탑재, 조립 등)에 일하는 조합원도 특근 배제 등을 통해 통제하기도 한다.
시간을 통한 노동자 통제
한편, 조선소에서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해 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게 '시간 지키기'이다. 시간 지키기란 업무를 8:00~10:00, 10:10~12:00, 12:00~13:00, 13:00~15:00, 15:10~17:00에 맞추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소는 공장 안에서만 생산되지 않는다. 대우조선소의 경우 전체 공장 터가 200만 평에 달하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많이 든다. 그리고 여러 안벽을 옮겨 다니거나, 수십 미터 높이 배 위를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며, 간이 화장실이나 흡연실이 있어도 배 위에서 휴식을 온전히 취하기란 어렵다.
작업용 도구를 챙겨서 작업장까지 가는 시간, 작업 준비시간 등 관련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다수 조선소는 이를 노동시간으로 포함하지 않고, 공짜 노동을 강요한다. 심지어 어떤 조선소는 관리자들이 안벽에 대기하면서 관리·감독하는 때도 있고, 수시로 원청에서 사진을 촬영해 하청업체에 넘겨준 뒤 이를 가지고 노동자를 통제·관리하는 경우조차 있다고 한다.
특히 도장 노동자의 경우 일상적으로 유기용제에 노출돼 있어, 샤워는 필수다. 유기용제는 호흡기로 주로 흡입하지만, 피부로도 흡수되기 때문에 몸을 씻는 것은 안전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선 노동자들에게 근무가 다 끝난 후에 샤워를 하라고 한다. '오직 일하는 시간만이 노동시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한 뒤로 이런 '시간 지키기' 통제는 더 극심해지고 있다. 조선소의 노동시간은 임금 총액과 비례하다 보니, 사측이 이를 악용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임금을 기본으로 깔아놓고 장시간 노동으로 임금을 보전하는 방식을 강제해왔다는 얘기다.
장시간 노동의 폐해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생지옥' 조선소는 오늘도 노동자의 건강과 삶,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해가며 '오직 일 많이 하라, 그러면 돈 많이 번다'는 식의 주장을 강요하고 있다.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라는 것이다. 쌀이 있을 때 배 터지게 먹고, 없을 때 쫄쫄 굶으라는 논리는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노동시간을 줄여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지만, 조선소는 시대를 거슬러 장시간 노동을 오히려 확대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최대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을 정부가 들고나왔을 때 다른 조선소 노동자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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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시간은 업무포함 아니다? 추세에 역행하는 조선소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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