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방한 첫 일정으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기시다 총리 내외가 헌화, 분향 뒤 묵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사실상 아베 총리 입장 계승한다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해석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보면, 일본 정치권의 보수 우익의 특성과 비교했을 때 나름 전향적인 태도가 있어요. 일본 정치권에 너무나 보수적이고 우경화돼 있는 상황 속에서 발언하는 것 자체가 용기를 내는 것이거든요.
기시다 총리 발언 중에 유감을 표명한 것, 역대 총리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말조차도 일본 정치권의 입장에서 본다면 비판을 받을 수가 있어요. 이런 점을 현실적으로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물론 아베 총리가 2013년 이후 한일 관계 발전의 역사를 매우 훼손한 부분이 시정 안 되는 상황입니다. 여기에는 한국 정부에서도 오류가 있었다고 생각이 돼요."
- 오류요?
"한일 관계가 한국에서도 국내 정치에 활용이 되는 게 사실이에요. 1995년도 11월에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발언으로 일본의 보수 우익 세력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서 일본 보수 우익이 조직화되는 계기 마련하는 부분이 있고요. 2005년도에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시마네현 독도 편입 관련 다케시마의 날 공포식이 있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이것에 격분해서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취지로 공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것도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요.
2012년에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결정타예요. 그건 일본과의 외교 갈등의 소재로 독도 문제가 존재하는데,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독도를 방문해 일본의 보수 우익이 국내외 여론을 등에 업고 우경화 활동을 극단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어요."
"과거사 덮어버리고 앞으로 가자?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것"
- 기존 예상은 기시다 총리가 여름쯤 방한할 거였죠. 근데 다소 급하게 방한이 이뤄졌어요. 왜일까요?
"미국의 요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해요. 한일관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미국의 외교 정책을 반드시 이해해야 해요. 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개선할 때나 악화할 때 언제나 미국이 있었어요.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5월 20일쯤에 히로시마에서 G7 정상회담 하고 그 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회의가 열릴 것이라고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한일간에 서로 교차 방문하는 게 선행이 돼서 한일 관계 개선이 상당 수준 더 올라간 상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한다면 좋겠다는 권고를 일본에 했을 거로 생각하고요. 한국 입장에서 본다면 지난 3월에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먼저 갔고 빈 잔에 물을 절반은 한국이 먼저 채웠는데 일본이 성의 있는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하는 게 국민들에게 손실로 비칠 수 있습니다."
- 일부에서는 기시다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때문에 온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요.
"동의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 그 문제를 관장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 평가단이 활동하고 있어요. IAEA가 최종 보고서를 낼 때 안전하다고 평가한다면, 일본은 오염수를 방출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길 겁니다. 미국을 포함해 일부 선진국들은 IAEA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인 바가 있어요. 그러니까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오염수 방출과 관련해서 지지를 얻느냐 안 얻느냐가 결정적 변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사를 묻고 가자는 거 같아요. 100년 전 일로 일본에 무릎 꿇으라는 건 자기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까지 말했죠. 국민 감정과는 맞지 않는 듯한데 괜찮은 건가요?
"전혀 괜찮지 않죠. 외교는 국제적으로 국가 이익을 최대화하는 행동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국가 이익이 무엇인지는 국민이 판단하는 것이고 당연히 국민의 지지와 협력이 필요해요. 만약 국민적인 지지와 협력이 없다면 외교에 대한 그 모든 것은 무효예요. 정당성이 없는 거예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 과거사 문제라고 하는 건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에요. 길게 보면 1875년 일본의 강화도 침략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한 사람의 결단에 의해서 해결이 되겠어요? 150년 된 문제고, 다섯 세대가 지나가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관련되면서 복잡한 문제가 됐습니다. 사실 윤 대통령이 한일 관계에서 과거사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지를 이해하는 게 문제해결의 제1단계예요. 복잡한 문제를 복잡한 걸로 인식해야 하는데 단순한 거라고 착각하고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또, 한국이 언제 일본에 무조건 무릎을 꿇으라고 했나요? 시시비비를 가려서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무릎을 꿇으라는 거예요. 잘못한 게 있으면 무릎을 꿇고, 잘못한 게 없으면 당당하게 대하고 그게 한일 관계의 기본이에요."
- 윤 대통령의 말은 지금 미래로 가야 하는데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힐 것이냐는 거고, 국민의힘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도 비슷한 발언 한 적이 있다는 주장인데요.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 미래로 나가지 못하면 그건 문제예요. 근데 과거사를 덮어버리고 앞으로 가면 그건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것과 다름없어요. 기초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번 미국에 가서 70년 전에 한국을 위해서 피 흘린 미군 역사에 대해서 얘기한 게 있어요. 우리나라를 위해서 70년 전에 피 뿌린 미국 참전 용사들이 있기 때문에 한미동맹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00년 전에 일본에 의해서 주권을 빼앗기고, 부당하게 고문당하고 숨져간 조상들의 원한과 자주독립을 위한 희생과 헌신은 중요하지 않나요?
조상들이 흘린 피 덕분에 우리나라가 자주독립을 되찾았고, 번영의 기회를 만났는데, 그 사실을 무시하고 미래로 가자면 미래가 열립니까? 한미동맹에서는 동맹국 군인들의 과거 헌신을 중시하면서 한일 관계에서는 조상님들의 과거 희생을 외면하자고 하면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미래는 언제나 과거라는 기초 위에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 박진 외교부장관이 3월에 우리가 물컵의 반 잔을 채웠으니, 일본이 반 잔 채울 차례라고 했죠. 반 잔이 채워졌을까요?
"반 잔이 다 채워진 게 아니고, 우리가 100 정도의 물컵을 채웠다고 가정하면 일본이 이번에 100 중에서 10 정도를 줬다고 봐요. 90이 아직 비워져 있다고 생각해요."
- 일각에선, 기시다 총리가 물을 다 마시고 또 내놓으라고 한 거라고 보던데.
"그렇게도 볼 수 있어요. 지금 독도 문제라든가 오염수 문제라든가 교과서 문제라든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다른 이슈들, 위안부 문제 이슈들, 또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의 문제들 이런 것들이 다 있는데 이런 것들을 다 양보하라고 지금 일본 쪽에서 압박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말하자면 물 먹고 더 달라고 하는 거에 비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에 기시다 총리가 와서 몇 가지의 긍정적인 장면들이 있었잖아요. 셔틀 외교 복원했고 오염수 문제에 대한 시찰단, 강제 동원 피해자에 대한 유감 표명,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피해자위령비에 공동참배 등이 있었습니다. 이걸 점수로 환산하면 100개 중의 10개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환영한다는 입장을 낸 거예요. 굉장히 굴욕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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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방문, 컵 10%만 채운 것... 여전히 90%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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