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게 웃는 한일 정상윤석열 대통령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뒤 악수하고 있다. 2023.5.7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로 와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했습니다. 3월 16일 도쿄 정상회담 이후 두 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 때문에 3월 회담을 계기로 지지율이 오른 기시다 총리가, 지지율 추락의 곤경에 처한 윤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 '급히 만든 회담'이란 해석을 피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여하튼 일본 총리가 양자 차원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은, 2011년 10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 이후 무려 12년 만입니다. 그래서인지 두 정상 모두 셔틀 외교의 복원을 유난히 강조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공동회견 모두발언의 처음과 마지막에 "셔틀 외교가 본격화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 "이번 기시다 총리 님의 방한을 통해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 그리고 양국 관계 정상화가 이제 궤도에 오른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질의응답 과정에서도 한 차례 더 셔틀 외교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에 맞장구라도 치듯, 기시다 총리도 모두발언 첫 문장을 "~ 서울을 방문해 셔틀 외교를 본격화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셔틀 외교는 계속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단락으로 발언을 마쳤습니다.
셔틀 외교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
두 정상의 말만 들으면, 마치 이번 정상회담의 목적이 셔틀 외교의 복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셔틀 외교가 그렇게 대단한 걸까요. 원래 셔틀 외교는 외교 및 국제관계에서 제3자가 분쟁 당사자 사이를 오가며 하는 중재 외교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였습니다. 구체적으로는 1973년 11월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아랍 쪽을 빈번하게 왕래하며 제4차 중동전쟁을 중재했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것이 한일 사이에는 양국 수뇌가 1년에 한 차례씩 상대국을 방문해 자유롭게 현안을 논의하자는 뜻으로 변형돼 쓰이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인 2004년에 처음 시작해,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총리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가 왜 그리 오랫동안 중단됐었을까요.
크게 두 번 중단됐는데, 모두 역사 문제가 원인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는 고이즈미 총리의 2005년 8월 15일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중단 원인이었고, 이명박 대통령 때는 2011년 12월 열린 교토 정상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경위를 보면, 역사 문제의 해결 없이 셔틀 외교의 지속이 쉽지 않다는 걸 엿볼 수 있습니다. 역사 문제를 외면하고 셔틀 외교를 하는 것이 내용보다 형식을 앞세우는 것, 아니 목적보다 수단을 강조하는 것이어서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결단력과 행동에 보답하기 위해 시기를 앞당겨 방한했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그 말 속에는 그의 조기 방한, 즉 셔틀 외교의 조기 복원이 과거사 '책임 면제'에 대한 선물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사 면제의 대가치고는 너무 값싼 대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