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홍은동 보도각 백불을 그렸다. 하얀 얼굴에 붉은 입술이 자못 여성적이다.
오창환
지난해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사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글은 '
성모상 만들던 작가가 만든 관세음보살상' (https://omn.kr/1yqtr)였다. 올해는 보도각 백불(白佛)이라 불리는 잘생긴 부처님이 계신 서대문구 홍은동 옥천암으로 간다.
옥천암 가는 길
옥천암(玉泉庵)은 북한산 끝자락에 자리한, 조계종 직할사찰이며(서울시 서대문구 홍지문길 1-38) 보물 1820호다. 예전에 홍제천에 옥같이 맑은 물이 흘러서 절 이름을 그리 지었을 것이다.
옥천암은 동해의 낙산 홍련암, 서해의 강화도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옥천암에 있는 '보도각 백불(白佛)'로 불리는 부처님이 있기 때문이다. 보도각(普渡閣)이란 넓을 보(普) 자에 건널 도(渡) 자를 써서 누구나 다 성불할 수 있다는 뜻으로 불상을 보호하는 누각이다.
옥천암 불상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조선 순조 때 윤덕삼이란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를 팔러 서울로 갈 때마다 옥천암 마애불에 들러서 예쁜 배필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하루는 윤덕삼의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서 내일 새벽 자하문에서 맨 처음 문을 나서는 여인과 결혼을 하라고 한다.
다음날 윤덕삼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자하문을 처음 나서는 여인을 봤다. 예쁜 여인이 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녀에게 달려가서 간밤에 자신이 꾼 꿈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도 그와 똑같은 꿈은 꾸었다고 한다. 둘은 돌부처 앞에서 혼례를 올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윤덕삼 살았던 시절에는 보도각도 없고 절도 없고 오직 부처 바위만 있었다.
보도각 백불은 일찍이
고려 후기에 조성된 불상인데 1896년 명성왕후가 보도각과 관음전을 지었다고 하고, 흥선대원군이 현판을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흥선대원군의 부인 민씨가 고종의 천복을 빌며 조개껍데기 등을 빻아 만든 하얀색 안료인 호분(胡粉)을 발랐다고 한다.
흰색의 호분이 전체적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백의관음 또는 백불(白佛)이라고 부른다. 흥선대원군과 명성왕후는 사이가 아주 좋지 않다고 알려져 있는데 보도각 백불에서 만큼은 시아버지와 시어머니 며느리가 모두 한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홍제역에서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고 옥천암을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니 홍제천 너머로 옥천암이 보인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길가에 연등이 걸려있다. 홍제천은 아쉽게도 이제는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지 않는다.
홍제천 너머로 옥천암을 바라보니 저간의 사정을 알 것 같다. 고대로부터 북한산 끝자락의 바위 투성이 계곡에 10미터 높이로 유난히 툭 튀어나온 바위가 우뚝 서 있었다. 어떤 영험한 기운을 느낀 고려시대 불자들이 그 바위에 불상을 조각했다.
그 불상은 민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조선말에 이르러 왕가의 권력자들이 그 기도처에 애정을 느껴서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전각을 짓고 호분을 발랐다. 그리고 절을 지었는데 이곳은 원래 널찍한 절터가 되기에는 너무 바위가 많고 협소한 지형이다. 이 절에서 보도각 백불이 주인공이고 절이 조연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