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유업이 자사 발효유 제품 '불가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자 실제 효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2021년 4월 1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판매 중인 남양유업 불가리스.
연합뉴스
언론도 공범이었다. 남양유업 산하 연구소에서 발표한 실험 결과임에도 객관성을 의심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 보도 행태도 도마에 올랐다.
과학을 전공한 언론사 기자나 데스크가 드물다 보니 과학을 사칭한 가짜 과학을 거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역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선정수 팩트체커도 환경전문기자가 되려고 다시 대학에 들어가 환경보건학을 공부했고 생물분류기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다른 '문과 출신' 기자들이 놓치기 쉬운 '가짜 과학'을 가려낼 안목과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과학 사칭, 언론도 공범이었다
이런 자신감은 그를 행동파 언론인으로 만들었다. 그는 팩트체크 기사를 통해 허위정보를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정부 부처에 직접 고발까지 했다. 코로나19 예방 제품이라고 속인 '코고리'와의 투쟁기가 대표적이다.
그는 평범한 코골이 방지 제품에 항균 탈취 효과가 있어 코로나19와 호흡기 질환을 퇴치한다고 허위 광고한 제조사를 상대로 팩트체크 기사를 12건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결국 법원은 지난 2022년 12월 이 업체의 유죄를 인정하고 500만 원 벌금형을 내렸다(이 책 제1장 '지적당하지 않은 악의' 중에서).
저자는 "오늘도 많은 업자가 온갖 제품을 만들고 과학적으로 검증됐다는 여러 가지 숫자와 증명을 제시하며 물건을 판매하고 있다"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와 인력으로는 모든 제품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다. 언론이 그 중간에서 검증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오히려 돈을 받고 문제 많은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 책 24쪽 중에서).
그렇다면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는 가짜 과학에서 자유로울까? 한동안 아파트나 빌딩 문손잡이나 엘리베이터 버튼 등 사람 손이 닿는 곳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구리 성분이 들어간 항균필름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까지 들여 관내 아파트 등에 항균필름을 배포했지만, 실제 감염 방지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는 명확히 검증되지 않았다.
선정수 팩트체커는 국립보건연구원에서 항균필름 감염력 억제 효능 분석 연구를 발주하고도 결과를 공개하지 않자, 국회의원실을 통해 자료를 입수해 공개했다. 국내 시판 중인 항균필름 30종 가운데 8종만 2시간에서 24시간 접촉 후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8종조차 2시간 이내 접촉이 일반적인 상황에서 바이러스 감염을 얼마나 막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이 책 제7장 '근거 없는 비과학적 권고' 중에서).
이 책은 이처럼 과학을 사칭한 가짜과학 팩트체크 사례를 3부로 나눠 21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는 '음이온 효과'를 강조했지만 오히려 암 발생 위험만 키운 라돈 침대 사태를 비롯해 과학을 사칭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유해한 상품 사례를 소개했고, 2부에서는 과학 사칭에 언론이 큰 역할을 한 사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3부에서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겨냥한 비과학적 흑색선전 등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든 과학 사칭 사례를 짚었다.
최춘식 의원의 통계 왜곡... "감염은 내 편 네 편을 따지지 않는다"
각 장마다 '권위를 등에 업은 호소', '무지에 대한 공포', '일반화의 오류' 등 키워드 별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 코로나19 방역 체계까지 위협한 대표적 키워드가 '통계 왜곡'이다. '백신 미접종자보다 백신 접종 사망자가 절반 이상'이라거나 '코로나는 200% 감기 바이러스' 같은 통계 왜곡이 더 위험했던 이유는, 허위 정보를 퍼뜨린 장본인이 당시 방역 정책에 영향력이 큰 제1야당 국민의힘 국회의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