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 하려고마을학교 숙제다.
색칠해서 치매 예방도 하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며 한글을 익히기
김응숙, 이상자
옅은 갈색 머리에 빨강 리본 핀, 빨강 블라우스에 소매 단은 노란색, 빨강 스카프를 리본처럼 맸다. 바지는 초록 바지, 바지 옆에 노란색 리본 장식, 노란 양말에 신발은 보라색이다. 노랑과 빨강 꽃이 핀 꽃밭에서 소녀는 꽃을 꺾고 있다. 노랑 나비 한 마리도 날아와 어떤 꽃에 앉을까 고민 중인 그림이다. 글짓기는 세 문장이다.
"아기는 혼자서 꽃고지를 하나 봐요. '언니 있으면 함께 하려무나.' 할머니가 도와주면 좋은데 너무 멀어서 못 도와준다."
'꽂이'라는 두 글자가 틀렸으니, 집에 가서 또 얼마나 속상해 할지 눈에 선하다. 글 배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김OO 학생은 이 세 문장을 쓰기 위해 몇 번씩 생각하고 다른 종이에 써 놓고, 고치기를 여러 번 하는 학생이다. 나름 정성과 시간을 투자해 공들여 쓰고, 다듬은 문장인 것이다.
다른 학생들과 달리 맞춤법 틀린 것에 대하여 특별하게 속을 끓이는 분이다. 칠판에 붙여 놓고 수정할 때 두 글자만 틀렸다고 칭찬을 듬뿍 해야겠다. 그래도 속상해 할 건 불 보듯 뻔하지만.
같은 도안인데 색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 다르다. 그림과 글을 보면 학생의 성격이 어떤지, 가치관이 어떤지, 좋아하는 색은 무엇인지 다 보인다. 정갈하고, 의리 있고, 맺고 끊음이 분명한 학생이다. 일찍 남편 여의고 혼자서 오남매를 키워내신 훌륭한 학생이다.
언젠가 내 글을 보고 모 방송국에서 이 학생들을 취재해서 방송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그 중에 특별한 사연이 있는 분을 찾는다고 했다. 이분들은 한 분 한 분 특별한 사연이 없는 분이 없다. 물론 모든 사람에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 학생들은 학교에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살면서 겪은 고통과 설움의 무게를 배운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 아니 가늠을 못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수업 때 어느 학생이 한 말이 있다.
"선생님, 우리는 칠판에 누가 와서 '너 여기서 오늘 죽일 거다.' 이렇게 써 놓아도 내가 죽는 건지 물러유. 글을 물르니께, 죽인다구 써놓아도 모르고 팔십 평생 살아왔슈."
그 말에 난 쇠 뭉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 삶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으랴.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글 몰라 배우겠다는 어르신들을 위해 그분들이 원하면 글을 가르치기로 결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문해 수업!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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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마을학교 성인문해교원입니다. 이밖에 웰다잉강의, 청소년 웰라이프 강의, 북텔링 수업, 우리동네 이야기 강의를 초,중학교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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