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우유 빙수. 언제 먹어도 맛있다.
한재아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디저트들 사이에서도 여름이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따로 있다. 달콤하고 시원한 수박 화채. 어렸을 때는 항상 여름이 올 때마다 마트에서 잘 익은 수박을 한 통씩 사 오고는 했다. 큰 수박을 들고 집에 도착하면 할머니께서는 수박을 반으로 나눠주셨고, 나는 숟가락을 들고 가운데서부터 속을 파내기 바빴다.
동그랗게 파내진 수박이 수북이 쌓인 자리에 시원한 사이다나 밀키스를 붓고, 과일 통조림을 넣은 후 추가로 각얼음까지 띄워주면 시원하고 맛있는 여름철 K-디저트가 완성된다. 만들어진 화채를 투명한 컵에 나눠 담아 한 모금 마시면 과일 향이 섞인 탄산음료의 청량감이 기분 나쁜 끈적임을 잠시나마 잊게 해줬고, 작은 티 포크로 건져 먹는 과일의 상큼함이 올라가는 불쾌 지수를 가라앉게 했다.
시원한 화채를 먹고 거실 바닥에 엎드려 누우면 커다란 거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서서히 눈이 감겼다. 에어컨 바람에 서늘함을 느끼며 가족들과 함께 기분 좋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푹푹 찌는 여름의 더위도 잊어버리고는 했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애써 시간을 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함께 보다는 각자가 더 편해졌고, 서로의 시간을 맞추는 일이 피곤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실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도 가족보다는 친구를 먼저 부르는 것도 있고.
이건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무언가를 함께 하기로 약속한 후 '나 그때 바빠', '어차피 매일 보는 얼굴이니까', '나중에 하지 뭐'와 같은 이유로 하루하루 미뤄지는 약속들이 점점 늘어났다. 아마 지금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잊힌 약속들도 꽤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혼자 보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굳이 가족과 함께 보낼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 친구와 집을 나와 자취를 하는 친구 역시도 가족보다는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라는 유명한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미 익숙함에 잠식된 지 오래인 지금은 소중함 같은 건 잊어버리고도 남은 듯하다. 어렸을 때 함께 먹었던 화채 덕분에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가족들과 거실에 둘러앉아 만들어 먹었던 음식에 대한 기억이 뚜렷해진다.
사실은 그때 먹었던 음식보다 함께 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이 더 그리워지는 것일지도. 이번 여름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또 얼굴만 보고 지나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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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흘러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20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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