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한 물품의 90%를 판매하며 기분 좋게 마무리된 아이들의 기부 마켓
이준수
마켓이 위치한 하조대 해변은 밝은 햇살로 빛났다. 따뜻하고 짭조름한 바람이 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펼쳐졌다. 6학년에서 제작한 'GJ MARKET' 현수막을 걸어 부스를 차렸다. 기둥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그린 산불기부 포스터를 붙였다. 돗자리 여덟 장을 이어 붙인 후 물건을 나열하자 제법 장터 분위기가 났다.
로컬 마켓 행사에는 우리 학교를 제외하고도 열 팀이 넘는 부스가 함께 했다. 대부분 하조대 인근과 양양 일대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로 생활 소품과 맛깔난 음식 등 정성이 가득 담긴 상품이 주를 이루었다.
가격대도 비싸지 않고, 개성 넘치는 제품이 많았다. 특히나 서핑으로 유명한 동네인 만큼 '웨트슈트'와 '비치웨어', '루즈핏 티셔츠' 같은 아이템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네잎클로버가 그려진 양말과 줄무늬 양말 두 켤레를 샀다.
우리 학교 부스는 굉장한 지지와 관심을 받았다.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내건 유일한 부스였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예상한 판매율은 50%였다. 초등학교에서는 거의 매년 벼룩시장과 나눔 장터를 연다. 그렇기에 물건의 개수와 품질, 종류를 보면 어느 정도 판매 결과를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마켓에 참여한 어른 또한 지역주민이며 강릉 산불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영동 지방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안 팔린 물건 있으면 아줌마한테 말해. 사줄게."
아이들이 소리 높여 물건을 판매하고 있으니 다들 한 번씩 들러 작은 물건이라도 사 주었다. 어떤 분들은 물건을 사지 않고 기부금만 내고 가기도 했다. 시골에는 아이들이 귀하니 아이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장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나눠줄 생수를 사러 갔더니 어린이들 고생한다며 카페 사장님이 얼음물 스물다섯 컵을 담아 캐리어에 담아주는 일도 있었다. 종이봉투에는 카페에서 판매 중인 구움 과자가 수북이 들어있었다. 스물다섯 명 아이들이 모두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과자를 다 먹을 즈음에는 행사장에 들른 또 다른 어른 한 분이 아이들에게 어묵을 사주셨다. 뭐랄까, 그 장소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돕고 싶어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기부는 기쁨이고 재밌는 일이라는 깨달음
오전 10시부터 12시 30분까지 두 시간 조금 넘게 진행된 기부 마켓은 90% 이상 물건을 판매하고 끝이 났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도서관에서 수익금 정산을 했다. 총액은 놀랍게도 23만 2천3백 원. 전교생이 스물다섯 명인 학교에서, 무진장 저렴한 가격으로 물건을 판매한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액수였다. 아이들은 모두들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몇몇 어른들이 물건을 사지 않고 넣어둔 지폐 기부금도 섞여 있었겠지만, 우리가 기획하고 판매하여 20만 원이 넘는 돈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기부라고 하면 연말 '구세군 불우이웃돕기' 행사처럼 점잖고, 엄숙한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느낌는 우선적 감정은 기쁨에 가까웠다. 그것을 지켜보던 나도 아이들과 덩달아 웃어버렸다.
기부는 기쁨이고, 재밌는 일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의도치 않았고, 생각치도 못 했던 결론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기부는 웃음'이라는 결말에 도달했다. 정말 멋진 마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 산불 피해주민을 위해 시작한 일이 결국은 우리를 위한 일이 되었다.
수학 시간에 1에서 1을 빼면 0이 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무언가를 하나 빼도 0이 아닐 수 있다고 가르쳐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