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2023.4.26
연합뉴스
판문점 선언은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천명했다. 민족 내부의 역량을 총결집해 위기를 극복할 것인가, 미·일의 힘을 빌려 극복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도 양 선언은 차이를 띤다.
두 선언은 한민족의 에너지를 어떻게 안배할 것인가와 관련해서도 명징하게 대조된다. 판문점 선언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소망이며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라고 천명함으로써 민족문제 해결에 최고의 비중을 배분했다.
이에 반해 워싱턴 선언에서는 한국의 역량을 글로벌하게 안배시키려는 미국의 의지가 노출됐다. 이 선언은 "한·미 양국은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며 우리가 함께 취하는 조치들은 이러한 근본적인 목표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라고 천명했다. 인도·태평양 문제가 근본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미국이 생각하는 한·미동맹의 근본 목표가 중국을 겨냥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수행임을 문서상으로 명시한 셈이다.
러브샷과 팝송 열창을 하는 사이에 윤 대통령은 바이든과 기시다의 페이스에 휘말리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한·미동맹의 근본 목표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된 것임이 명시적으로 선언됐다. 향후 한·미동맹이 미·일의 세계전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것이다.
패권 경쟁에 한국 끌고 다니는 미국
한·미공동성명 문구 중에 "태평양 도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기로 하였다", "5월에 최초의 한·태평양 도서국 정상회의를 개최키로 한 한국의 결정" 같은 표현이 있다. 이 역시 한국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최근 남태평양에서 전개되는 미·일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까지 한국이 휘말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남태평양에서 미·중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호주 동북쪽인 솔로몬이다. 작년 4월 1일 중국 정부는 솔로몬과 안보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아시아 차르'로 불리는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보좌관이 4월 22일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솔로몬을 방문해 우려를 표시했다. 5월 22일에는 호주에 주재하는 솔로몬 고등판무관이 A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공안은 솔로몬 경찰의 통제를 받을 것'이라며 미국 측을 안심시키는 일이 있었다. 이런 식의 공방전이 그 뒤 계속 이어졌다.
이번 한·미공동성명에 한국과 태평양 도서국의 협력이 언급된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국도 미·일에 가세해 남태평양에까지 가서 패권 경쟁에 휘말릴 위험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너지가 남태평양으로까지 확대 혹은 분산되게 된 것이다. 한국 내부 문제에 투입될 역량이 불필요한 '오지랖'으로 인해 분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게 된 것이다.
이처럼 워싱턴 선언은 전쟁 억제를 명분으로 도리어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한국의 외세 의존을 더욱 강화했다. 거기다가 한국의 에너지를 사방으로 분산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판문점 선언과 명확히 대조된다.
남한뿐 아니라 민족 전체의 명운과 관계된 핵심 노선이 불과 5년 만에 전혀 다르게 천명됐다. 그것도, 긴박하고 결정적인 시점에 그런 노선 변경이 일어났다. 일분일초가 아까운 이 시기에, 대한민국이 윤석열 발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