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기부 기재 제도가 자리 잡으면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는 ‘학교폭력 해결을 위해 자치적 결정을 하는 곳’이 아니라 마치 사법기관처럼 되어버렸다.
참여사회
차별과 폭력에 대항하는 힘
그렇기에 학교폭력의 새로운 해결방안을 다시 고민하는 지금 학생인권조례가 제시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 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사람은 누구나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고 인간답게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공적인 선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차별금지 조항에 성소수자를 명시하는 것 역시 종교적 신념의 문제가 아니다. 성소수자 학생들을 폭력에서 보호할 대상으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다.
내가 못나서 차별을 겪는 게 아니라는 것, "내가 못났다"는 생각은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만든 허상이라는 것을 학생들이 깨닫게 해야 한다. 그랬을 때 학생들은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차별적인 구조를 성찰하는 것은 피해자들이 자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해당 사건을 그저 '내가 지질해서 당한 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차별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한다면, 피해를 드러내는 일은 '개인적 치부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사회 문제에 대한 용감한 증언'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인식이 달라지면 학생들은 자신의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게 되고 힘 있는 사람에게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힘을 외면하면 결국 그 힘이 자신에게도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인의 고통에 오지랖 넓게 끼어들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권교육에서도 다루는 내용이지만, '인권에 대한 교육'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교실에서 인권교육을 해도 현실에서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학생들의 비웃음만 살 것이다.
나아가 학생들이 인권을 침해당했을 때 그 상대가 누구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인권침해를 구제받도록 하는 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더불어 권력이 있는 사람의 폭력에 대해 더욱 단호하게 대응하는 분위기도 자리 잡아야 한다.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폭력을 사용해서 내린 결정이 무효가 되고 폭력을 쓴 주체가 권력을 잃을 때, 폭력이 자리 잡을 여지도 사라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사나 관리자에 의해 학생이 폭력을 당했을 때 가해 당사자뿐 아니라 학교장 등에게도 책임을 묻고 학교 전체에 인권 연수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학교 공동체가 폭력에 대해 공론화하고 함께 성찰하면 학생들도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 교사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사의 사과를 통해 학생들은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를 배우고 교사에 대한 인간적 신뢰도 갖게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폭력적 행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조용하지 않다
흔히들 평화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조용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상태를 숙주 삼아 정작 힘 있는 사람들의 폭력이 용인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혐오 세력의 공격을 받고 있지만, 학교는 지금보다 더 시끄러워야 한다.
권력 있는 사람들이 남용한 힘에 맞서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문제 제기할 수 있을 때, 그로 인한 '시끄러움'이 힘의 균형을 새롭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힘이 균형을 찾을 때 학교폭력이 숨 쉴 토양을 잃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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