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훔치는 이우진 작가고 이우영 작가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지난 3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남소연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가 지난 3월 11일 별세하면서 문화예술계의 '불공정 계약 관행'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고인은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3년이 넘는 저작권 분쟁을 겪던 도중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 작가의 죽음으로 만화계, 웹툰 업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불공정 계약 문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 사태에 국민적인 관심이 쏠리자,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대책을 발표했지만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아래 대책위) 대변인 김성주 변호사가 지난달 23일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이 작가는 2007년 형설앤과 포괄적·무제한·무기한으로 '검정고무신' 사업권 일체를 형설앤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을 근거로 형설앤 측이 이 작가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창작물에 활용한 것을 문제 삼아 고소를 진행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약 15년간 '검정고무신'으로 77가지 사업이 진행되었으나 이 작가의 수입은 1200만 원에 그쳤다. 대책위는 '검정고무신'의 창작에 관여하지 않은 업체 대표가 저작권 지분을 갖게 한 저작권 계약 또한 문제 삼았다.
범유경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작품활동과 사업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계약금의 3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지불하게 되어 있는 계약 내용은 문제가 된다" 고 해석했다.
문화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불공정 계약 관행
창작물이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 대성공을 거두고도 불공정 계약 체결로 정작 창작자는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는 비단 출판계만의 일이 아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와 같이 저작권 양도와 관련해 부당한 계약을 체결하는 일은 출판업계뿐 아니라 웹툰, 웹소설 업계에도 만연하다. 을의 위치인 작가들이 업계 내에서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도 항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며 이번 사태를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대해 바라보아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범 변호사는 불공정 계약 관행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창작자들이 사측과 비견했을 때 생계나 데뷔, 프로모션 등 여타 조건 문제로 협상력이 낮고, 이러한 협상력을 보완해 줄 다른 방비책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정고무신' 사태 발생하자 뒤늦게 대책 마련 나선 정부
이 작가의 죽음으로 불공정 계약에 대한 문제 인식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정부가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례적으로 특별조사팀을 신설해 '검정고무신' 계약의 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이외에도 문체부는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를 위해 저작권법률지원센터를 개소했다. 또한, 신진 문화예술인을 위한 저작권 서비스를 강화하고 찾아가는 저작권 교육을 대폭 확대한다. 창작자 권익 강화를 위해 법·제도적 보완 장치도 강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문체부는 만화를 포함해 문체부 소관 15개 분야 82종의 표준계약서를 전반적으로 재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를 토대로 창작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을 시정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표준계약서 개정만으로는 유사 사건 재발 방지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범 변호사는 "표준계약서는 기본적으로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저작권 침해 사례나 불공정 계약에 관해서 실태조사가 이루어져야 하고, 특히 후자에 대해서는 비전문가인 저작자들의 자기보고 형태가 아니라 계약서 원문에 기초한 조사가 시급하다"고 전했다.
또한 "교육만을 강조하는 풍조가 아직도 있는데, 이미 독소조항에 대해서 아는 작가들도 피치 못하게 계약서에 서명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교육'이 대안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저작권 교육 확대에만 집중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포괄적 양도 제한하는 저작권법 개정 이루어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