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불광동 카페 '흔적' 주인장 이하연. (사진: 정민구 기자)
은평시민신문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구점과 떡볶이 가게가 우리를 붙잡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친구들의 집을 하나둘 세며 가던 기억. 서울 은평구 불광동 연신초등학교 앞 골목은 여전히 그 기억 속 모습이 가득하다.
'흔적'은 그 사이에 아주 슬그머니 들어선 카페다. 무심한 가판대를 보며 '여긴가?' 싶은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검은 벽과 바닥, 우드톤의 가구들과 따듯한 빛들이 반전을 선사한다. 때로는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이 쉬어가며 물 한잔 마시고 한숨을 돌리고 가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산책 나온 강아지가 지나치다 꼭 들리는 필수 코스가 되기도 한다. 안과 밖이 다른, 하지만 결국엔 어우러지는 공간 흔적에서 주인장 이하연을 만나봤다.
외부음식 반입도 가능... 모두에게 열린 공간
-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맞아요. 어린이와 장애인, 청년이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카페 주인장 역할도 하고 대학 교단에서 창업 관련 강의를 하기도 하고 가끔 쇼호스트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카페 운영시간이 매주 다르답니다."
- 흔적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사람들이 오고가면서 많은 흔적들을 남기고 가잖아요. 예를 들면 커피를 마셨던 잔과 같은 거죠. 그냥 오고 가는 과정만이 아닌 각각의 발자취가 된다고 느껴졌고 하나하나 기억하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으로 흔적이라고 지었어요. 지나가는 것들 중에서 의미 없는 것은 없다고 항상 생각하거든요. 방명록에도 실제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나 그림 등을 남기고 가면서 공간에 차곡차곡 흔적이 쌓이고 있어요."
- 카페 간판은 '은혜수선'인데요, 기존 간판을 그대로 둔 이유가 있나요?
"동네와 톤앤 매너를 맞추고 싶었어요. 지금 이 거리의 모습을 좋아해요. 외관적으로 큰 변화를 주지 않는 게 가장 잘 녹아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부는 세련된 느낌의 인테리어로 반전을 주고 싶기도 했고요. 한편으론 이 간판 또한 흔적이잖아요? 그 자체를 기억하는 의미도 있어요. 실제로 은혜수선의 손님들이 반가워하면서 더 자주 찾아주시기도 합니다."
카페 흔적에는 점자 메뉴판이 준비돼 있어 시각장애인이 음료를 주문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도 사장님과 수어로 이야기하며 편하게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수어의 날, 세계 여성의 날, 강아지의 날과 같은 잊혀지기 쉬운 기념일에는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이를 알리고자 노력한다. 장애인 안내견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어린이, 노약자 등 모두에게 편히 열려있는 공간이다.
또한 카페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디저트나 음식들을 가져와 음료와 함께 먹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인식들과 불편함에 대해 당연하다고, 또 당연하지 않다고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