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해 11월17일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교육청 제32지구 제5시험장 효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전광판의 문자 응원을 받으며 고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교과 활동 기록은 특목고나 자사고 아이들을 선발하기 위한 장치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알다시피, 학교 간 성적 격차를 대입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제출되는 학생부에 지역명과 학교명을 가리고 있다. 그뿐 아니라, 항목별 내용을 기재할 때도 지역명은 쓰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대학의 고등학교 간 차별을 최소화하기 위한 교육 당국의 고육지책이다.
정확히는,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에 대한 암묵적인 우대를 막아보려는 취지다. 그러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대학에선 고등학교의 교육과정과 3년 동안 이수한 과목만 보면, 해당 학교가 어디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지역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일반고의 학생부와 특목고, 자사고의 학생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만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대한민국이 출신 학교와 거주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신분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서 대다수 일반고 아이들이 '도토리 키재기'식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출신 학교·거주지 따라 대학 진학마저 결정되는 현실
학교 이름을 감추는 걸 두고 아이들조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조롱하는 이유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항목별로 기록하면서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임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방법은 차고도 넘친다. 이게 어디 학생부만의 문제일까 마는, 이런 어설픈 지침만으로 난무하는 온갖 편법을 제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요컨대, 낮은 내신 등급을 만회할 수 있는 학생부 기록은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아이들에게 해당할 뿐이다. 지난해 한 명문대의 인기 학과 합격생 중에 특정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이 광역자치단체의 일반고 전체 졸업생을 더한 합격생 숫자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이는 비단 명문대의 특정 한두 학과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해마다 신입생의 절반가량이 특목고, 자사고 출신과 서울 강남 지역 일반고 졸업생으로 알려져있다. 거칠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출신 학교와 거주지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신분 사회로 변모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서 대다수 일반고 아이들이 '도토리 키재기'식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목고, 자사고 등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은 일반고 입학과 동시에 내신 성적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 일반고의 본격적인 대입 수험생활은 고1 때부터다. 공통과목 중심인 고1 때의 내신 성적이 대학의 '간판'을 결정한다는 건 이미 상식이 됐다. 고1 때의 뒤처진 내신 성적을 고2와 고3 때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아이는 없다.
대부분의 일반고에서 고2와 고3 때는 개별 선택과목 중심인 데다 내신 등급을 환산하지 않는 진로 과목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내신 성적의 부담을 줄이고 수능 준비에 최선을 다하라는 학교 차원의 배려다. 동시에 이는, 내신 성적만 반영하는 학생부교과전형과 내신 성적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학생부종합전형은 이미 판가름이 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근래엔 한술 더 떠 대학의 '간판'이 중3 때 이미 결정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중1 때 성적이 고3 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고1은 대입 수험생활의 시작이 아니라, 도전의 마지막 기회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희망 대학의 '간판'을 낮춰 잡는다면 모를까, 고1 때 내신 등급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지금껏 남은 선택지는 정시 아니면 자퇴, 이 둘뿐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중상위권 아이들을 위해 '공부 못하는' 학교로의 전학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참 부박한 교육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