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에서 토끼등 가는 길. 광주 무등산에서 가장 편안한 길이다.
임영열
일 년 중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4월의 첫 번째 일요일인 지난 2일. 틀에 박힌 일주일간의 일상을 벗어나 휴식 같은 무등의 품으로 향한다. 완연해진 봄기운 탓일까. 무등산행의 기점이 되는 증심사 버스 종점에는 가벼운 등산복 차림의 산객들로 붐빈다.
무등산에는 거미줄처럼 수많은 길들이 길에 잇닿아 있다. 그중에서도 증심사 지구는 교통이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관계로 산행객의 약 7할 정도가 이곳으로 몰린다.
이날은 증심교에서 바람재를 지나 토끼등을 찍고 중머리재와 장불재·중봉을 거쳐 다시 중머리재로 돌아오는 코스를 선택했다. 그곳에 무등산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락한 휴식 같은 길과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기 때문이다. 미당의 말대로 바람재와 또끼등 중머리재는 앞에 앉아있는 아내 같은 산이고, 중봉과 장불재는 남편처럼 뒤에서 버티고 앉아있는 산이다.
증심교 갈림길에서 산객들은 양쪽으로 갈린다. 좌측에 있는 덕산계곡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계곡 초입에 있는 무지개다리를 노랗고 하얀 벚꽃과 갓 돋아난 연초록의 잎새들이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봄나들이 나온 일가족도 다리 위에서 꽃으로 피어난다.
오랜 가뭄으로 가늘어진 시냇물은 봄바람 따라 졸졸 흐르며 하얀 꽃잎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른다. 일명 '무당골'로 부르는 덕산계곡은 광주 현대사의 큰 아픔이 있었던 곳이다. 이른바 1977년 봄날에 일어난 '무등산 타잔' 사건이다.
당시 도심에서 밀려난 도시빈민들이 이곳 덕산 계곡에 들어와 무허가 움막집을 짓고 살았다. 그해 4월 전국체전을 앞두고 무등산 정화사업을 위해 철거반원들이 들이닥쳤다. 이 과정에서 낮에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시공부 하던 21살 청년이 철거반원 4명을 살해한 사건이다. 지금도 계곡 군데군데에 그때 삶의 흔적들이 생채기처럼 남아 있다.
평등의 산에서 불평등의 현장을 마주하며 40여 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언제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람재에 도착했다. 물 한 모금으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토끼등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약 20여 분 동안은 무등산에서 가장 편안한 길을 걷게 된다. 넓고 완만한 길이 광주 시내를 배경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1982년 원효사에서 바람재와 토끼등에 이르는 약 3.5km에 이르는 관광도로를 개설하면서 생겨났다. 개설 당시 무등산 보호단체의 반대가 있었지만 길 양옆의 철쭉과 단풍나무는 늦은 봄과 가을에 무등산의 명물이 된다. 길 중간에 광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약수터가 있다.
휴식 같은 시간이 지나고 길은 중머리재로 이어진다. 1.7km 남짓이 되는 이 곳 또한 오르막이 거의 없는 완만한 길의 연속이다.
무등산 봉화대가 있었다는 봉황대와 백운암터를 지나 무등산의 중심 허브 중머리재에 도착했다. 무등산의 교통 요충지 중머리재는 거센 바람 때문에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아 마치 '스님의 머리'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등산객의 7할 정도는 이곳에서 하산한다. 가을이 오면 억새꽃이 장관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