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지역 귀환촌 주민만 1만 7387명에 달한다.
심명남
철거반대 투쟁은 1969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이틀간 시위가 일어났다. 이로인해 시위 참여자 1명이 사망하고, 주민을 비롯 경찰관, 철도공안원 등 1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17명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이후 주민들은 여수시에서 지원한 신월동 재건마을(새마을), 오림동 경찰묘지, 인근 덕충동 소재 토끼등으로 이주한다. 일부는 다시 귀환촌으로 흘러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1969년 이주 이후 귀환촌에 남아있거나 다시 이사를 온 사람들과 이사와 살았던 사람들은 가난의 연속이었다.
귀환촌은 결국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행사를 앞두고 철거를 하게 된다. 귀환촌 지역이 박람회 행사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1일 오전 여수시의회 소회의실에서 '귀환촌 주민 투쟁, 민주화운동 위상정립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는 '귀환촌 투쟁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중심으로 제도적 방안 마련을 위한 첫 자리라 눈길을 끌었다.
여수시의회 김영규 의장과 구민호 의원이 주최한 이날 토론회에는 이미경, 김채경, 민덕희, 고용진 의원을 비롯 주종섭 도의원과 귀환촌 주민 그리고 전남대 학생회장 등 3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김영규 의장은 "우리 지역의 잊혀질뻔한 민주화운동 위상정립을 위한 토론회가 전남도의회와 여수시의회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향토문화적 사건을 발굴하고 토론회를 준비한 주종섭 도의원과 미평·만덕동 죄장으로 나오신 구민호 의원님께 감사드린다"라고 인사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