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밑바닥에서>
글항아리
처음 이 책을 읽을 땐,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의 슬픔과 기쁨이 주된 이야기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일하며 겪은 통증의 최고조를 찍고 '밑바닥까지' 써내려간 노동자의 병상 일지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아프고, 지독했다. 환자였거나 언제고 환자가 될 사람이라면 알아둬야 할 지금 우리 의료 바닥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펼쳐졌다.
저자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들의 인력은 "경제협력기구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며, 그 인력조차 "평균의 다섯 배가 되는" 병상을 감당하고 있다. 메니에르병(어지럼증과 청력 저하, 이명 등 증상이 동시에 발현되는 질병)을 앓으며 "출근만 안 할 수 있다면 죽어도 상관없었다"는 비명은 대다수 간호사의 절규와 다름없었다. 간호사의 매일을 압축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매일 죽어가는 환자들의 고통에 매 순간 공감해야 하는 것이 우리 일이라면, 우리는 하루도 견딜 수 없다. 그 고통은 무겁고, 많은 사람은 그걸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미숙하고 어려진다. 그들의 분노는 사정없이 우리에게 투사된다. 여기는 슬픔이 모인 곳이다.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이 들어와 머물며 그 감정을 우리에게 던지고 간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밑바닥을 본다. 그 바닥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것을 닮아간다. 그러지 않기가 너무 힘들어서 누군가는 매일 괴로워한다."
문제는 의료현장, 대책은 간호인력인권법 제정
"이 병원은 간호사가 무뚜뚝해", "'태움(간호사 사이에서 일어나는 직장 내 괴롭힘을 일컫는 은어)'이라는 말까지 나온 걸 보면 서열이 오죽 세겠어"라는 편협한 대화들이 낯설지 않다.
녹초가 되어 가는 간호사를 둘러싼 손쉬운 오해들이 깊어가는 사이, 국내 병원 중 95%를 차지하는 사립병원에 의존하는 허술한 국내 의료 체계는 수십 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간호대 정원 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부족한 의료인력 수를 늘려왔다고 자부하지만, 문제는 대학이 아니라 의료 현장에 있다.
현재 OECD 기준 평균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은 1인당 6~8명이다. 2016년 통계상 미국은 간호사 한 명이 5.3명의 환자를 돌보는 데 반해, 한국의 종합병원은 평균 16.3명을 돌본다. 일반 병원은 43.6명까지 돌보기도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지는 프리셉터(숙련된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1:1대로 간호 실무를 가르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 제도로 인해 들고, 나르고, 달리며 환자들을 보는 사이 이제 막 신입 티를 벗어난 간호사는 생떼 같은 후배들의 업무 능력까지 기르는 책무에 시달린다.
어떤 사고가 나든 으레 간호사 책임으로 전가하고, 충분한 교육 없이 느닷없이 선배에게 맡겨진 신규 간호사도, 넘치는 환자와 후배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력 간호사도 지옥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전문직의 책임을 필요 이상으로 달성하는 사이, 국내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7년 8개월. 지금 순간에도 고경력 간호사의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발표한 정기 실태조사(2022)에 따르면, 의료현장에서 1~5년 차 간호사는 연령대별 분포도에서 42%를 차지한다. 5년 차 이하의 저숙련자의 인력에 기대어 국내 의료현장이 유지되는 것이다. 1인당 적정환자 수 제도 안착과 인력 충원이 필요한 이유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정하는 간호인력인권법을 신속히 제정해야 퇴사자 없는 다양한 연령대의 간호인력이 확충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에도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숙련된 중환자실 간호사 수가 부족해, 함부로 차출했다가는 메꾸지 못할 의료 공백이 나오게 생겼다. 결과적으로 중환자실에 취약하고, 우리 모두를 지키기 위해 당장 공공 의료를 확충해야 한다. 어렵게 경력을 쌓은 간호사들이 임상을 버리지 않도록 말도 안 되는 업무 강도를 낮춰야 한다."
내 부모님, 형제의 목숨줄을 붙잡고 사투하는 사람들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그것이 가능하려면 당연히 '슬기로운 간호사생활'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 인력이 모두 원활하게 돌아갈 때야 환자의 생명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 '슬기로운' 뒤에 수식하는 의료 인력을 지칭하는 단어는 훨씬 다양해져야 한다.
개선 없는 의료 현장에서 지난한 싸움을 계속할 때, 버팀목이 되어 준 것은 곁을 지켜준 친구와 더불어 "이름도 남기지 않고 나를 위기에서 일으켜 길을 건네주던 사람들"이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는 출근 전, 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구토와 이명으로 신음하던 나날들 가운데서 자신을 번쩍 일으켜 길을 건너게 해줬던 시민들을 호명한다. "괜찮아요?"라고 물어봐 주던 인기척들. 그리고 그는 경력 3년 차가 됐을 무렵, 이제 후배들에게 괜찮냐고 묻곤 했다고 되뇐다.
저자가 '빼어날 수'에 '단련할 련'자라는 이름으로 계속 살고자 해준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다. 회복하고자 병원에서 돌봄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 돌봄을 돌려주는 시간을, 관심을 들이는 일을, 적어도 나의 건강을 돌보는 마음으로 함께 시작했으면 한다.
내일은 너무 늦다. 지금도 열린 그곳에 간호사가 새벽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그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의 상태가 변하면 그 사실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교정되도록 가장 빠른 길을 찾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환자로서 회복의 터널을 통과하여 받았던 밝은 빛을 그들에게 되비춰야 한다. 더 이상 과로로 새벽을 앓지 않도록.
밑바닥에서 - 간호사가 들여다본 것들
김수련 (지은이), 글항아리(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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