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장하준의 경제학레시피’ 출간 기념 간담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부키
그는 여전했다. 거침없는 입담과 날카로운 비판도 그대로였다. 최근 국내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시간 개편과 한일 굴욕협상 논란 등을 두고, '경악스럽다', '일본에 말려들면 안된다' 등의 직설적인 표현이 나왔다. 법인세를 깎아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를 두고서는, '차라리 파라과이로 가서 사업하라'고도 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런던대 교수의 이야기다. 그가 오랜만에 돌아왔다. 10년만에 새로운 책도 함께 들고 왔다. 제목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부키 출판)'다. 경제학 이외 누구보다 음식에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그였다. 마늘부터 도토리, 오쿠라, 멸치, 딸기, 코코넛, 초콜릿 등 18가지 음식 재료를 경제와 관련한 여러 논쟁적인 이슈와 함께 장 교수 특유의 '위트'와 '지식'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장 교수는 지난해 30년 넘게 있었던 영국 케임브리지대를 떠나 런던대 경제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10월 영국에서 '에더블 이코노믹스(Edible Economics: A Hungry Economist Explains The World)' 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고, 이번에 한국어판이 나오게 된 것.
그는 2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오래전부터 음식이야기를 통해 경제학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2006년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내고 난 이후 금융위기 등 현실과 경제학 강의 등의 책을 쓰면서 이번 책 출간이 미뤄졌다"고 소개했다. 1시간 30여분 동안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장 교수는 최근 국내 정치경제 등의 이슈를 묻는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10년 만에 새책으로 등장 장하준
"미국은 원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자, 일본에 말려들어선 안돼"
우선 최근 미국과 유럽발 금융부실에 따른 경제위기 가능성에 대해, 장 교수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후속편이라고 했다. 이어 "2008년 이후 근본적인 금융개혁이 없었다"면서 "영국의 중앙은행격인 영란은행은 지난 10년 넘게 기준 금리 이자율을 사실상 0%로 유지해왔으며, 이는 은행 설립 1649년이후 거의 처음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본주의 역사 400여년동안 가장 낮은 이자율이 10년 넘게 유지돼왔고, 그 사이 엄청난 거품이 쌓여 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장 교수는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선진국 등의 경제는 마이너스로 추락했지만, 주식시장과 부동산, 채권 등 자산은 크게 올랐다"면서 "이는 시장주의자들 스스로 자본주의 자체를 무력화 시킨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각국 중앙은행이 뒤늦게 금리를 올리면서 거품이 드러나고 있으며, "이제 어디에 어떤 폭탄이 숨어있는지, 어떻게 터질지 모를 지경"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또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등 자국산업 보호대책과 일본 등과의 교역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미국이든 중국이든 특정 국가에 치우지는 전략을 써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멸치'와 '국수', '소고기' 등의 음식 예를 들어가며,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국산업육성을 위해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써왔던 국가"라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좋게 말하면 똑똑하다고 할수 있지만, 한편으론 겉과 속이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미국도 반도체와 관련해서 중국에 대해 강하게 나가고 있지만, 나머지 부문에선 (미국의) 중국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결국은 미중간 협력할수 밖에 없다"면서 "한국은 미중 둘 중 한 나라를 택해선 안되며, 양쪽에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장 교수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비쳤다. 특히 일본의 경제체제 자체가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다.
"일본이 추구하는 한미일 공조에 말려들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패쇄적인 경제를 가진 나라 중 하나이고, 무역의존도 역시 우리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무역이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국제경제환경에서 일본이 처한 위치와 우리가 전혀 달라요. 친일, 반일차원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일본은 자급자족하는 집안이고, 한국은 밖에서 장사를 해야하는 집안이에요. 두 집안이 추구하는 행복의 길은 완전히 다른데, 단순히 국제정치학적인 관계에서만 판단하니, 걱정이 됩니다."
"69시간 노동? 3만불시대 이런 어젠다에 '경악', 시대착오적 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