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시간직장에서는 상사의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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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일개 팀원일 때 선배나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성격도 소심했고 시대 분위기도 일조했다. '좋은 게 좋은 거야'라며 스트레스를 합리화했다. 시대가 요즘과 판이하였으니 이해 못 할 일도 없었다. '그러려니!'가 일상이었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뜬 거 같은데,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관리자가 되었다. 말 안 통하는 상사들에게 입 닫고 살았는데, 이제는 후배들에게 입을 뻥긋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했다. 또래 동료들은 낀 세대(X세대)의 비애라며, 술잔에 원망과 한탄을 가득 담아 비운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자리를 박차고 떠나지 못하는 직장인 신세다. 탄식만 하며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신입 시절 사수의 메신저에 보란 듯이 "일 잘하는 직원 방법 찾고, 일 못하는 직원 핑계 찾고"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설마… 나 보라고?' 뜨끔함이 가슴을 적셨다. 이 말을 십수 년 뒤 자발적으로 다시 꺼내 들다니. 이렇게 해서라도 '후배에게 할 말 하는 방법'을 찾지 않을 수가 없다.
"애들 눈치 보여서 참다가 암 걸리겠어."
최근 임원으로 승진한 선배의 말이다. '임원도 저런 말을 하는데, 나 따위가 뭐라고?'라는 생각에 난데없는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선배는 적당히 입을 닫고 무게감을 지키면 되는 임원, 나는 결코 입을 닫을 수 없는 팀장 나부랭이다.
관리자가 스스로 생존 방법을 찾기 못하고 흔들리면 조직은 금이 간다. 조직에 앞서 상사부터 무너지는 경우도 목격했다. 의지 있는 관리자라면 시대에 맞는 생존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선배처럼 눈치 보인다고 팀장이 '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를 줄여 이르는 말)을 해버리면 조직은 모래알이 된다.
과거 상사에게 말하기 전 야심차게 다섯 번 고민했다면, 후배에게는 열 번 고민하고 말을 꺼낸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고릿적에는 상사를 향해 '지피지기 백전불태(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라는 말을 썼다. 이제는 반대 상황이 되었다. 각성하고 살아남기 위해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 전략'을 세워보자.
하나, 명확함이 미덕인 시대
상사의 말에는 명확함을 담아야 한다. 질책인지, 격려인지, 칭찬인지 돌려 까기인지 등의 불명확함은 요즘 세대에게 통하지 않는다. 상사의 애매모호한 표현을 홀로 또는 동료들과 고민하던 암호해독의 시대는 끝났다.
업무 지시를 할 때 상사는 요점부터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 '일을 왜 이런 식으로 해. 다시 해 와!'는 더 이상 관리자의 말이 아니다. 일말의 방향성이라도 제시해야 시간뿐만 아니라 상대의 구시렁거림도 줄일 수 있다.
상사도 처음 해보는 일이라면 샘플이라도 쥐여주어야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을 예방할 수 있다. 팀원들에게 깔끔한 지침도 주지 않고 화부터 내면 '자기도 잘 모르니까 저러는구나'라며 무능한 상사 취급을 받는다.
업무 분장도 명확하게 선을 지켜야 한다. 과거처럼 눈에 띄는 사람에게 일을 슬쩍 던지던 시대는 진작에 막을 내렸다.
"전무님이 자료 준비하라는데 누가 할래?"
과장 시절, 함께 일했던 팀장은 이런 식으로 단톡방에 업무를 툭툭 던졌다. 피곤한 눈치 작전 시간이자, 불필요하고 불편한 감정 소모 시간이었다. 일을 맡기는 근거를 명확하게 대지 않으면 '3요'(제가요? 이걸요? 왜요?)에 당황할 수 있음을 기억하자.
면담할 때도 마찬가지다. 상사와의 면담을 마쳤을 때, "도대체 뭐라는 거야?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거야?"라는 결론을 남기면 불통 상사로 찍힌다.
"나이도 있고, 일도 잘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거 다 안다."
진급자 발표날 팀장이 불러 어깨를 두드렸다. 속으로 '앗싸!'라고 외쳤는데, 팀장은 갑자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넌 진급에 떨어졌고, 난 책임이 없어'라는 표현이었다. 말을 빙빙 돌리니 충격은 더욱더 컸다. 업무 성과, 업무 태도, 상황 등을 설명하고 올해 더 열심히 함께 달리자는 말이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둘, 비난 금지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