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내가 전담하기로 선언한 지 두어 달,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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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그릇 수를 줄여볼 궁리를 하다 '4각 접시'를 구입했다. 4개 반찬을 한 접시에 옹기종기 담을 수 있어 편리하다. 반찬 가짓수와 담는 그릇까지 챙기는 아내가 내 의견을 수용했다.
4각 접시를 산 김에 가게를 한 바퀴 돌면서 '그릇 뚜껑'도 샀다. 뚜껑이 없거나 잔반 그릇 덮을 것이 필요했는데 마침 '실리콘 뚜껑'이 있었다. 용기 크기에 상관없이 밀폐력도 우수하다. 반토막 자른 수박도 이쁘게 덮어 보관할 수 있어 신기하다.
달포 전에는 '주방 가위'를 교체했다. 설거지를 하다 가위 끝에 고무장갑이 그만 찢어졌다. 가위 끝이 날카롭지 않은 주방 가위를 다이소에서 득템 했다. 빨간색 주방가위는 사용하기도 편해 자꾸 손이 간다.
설거지 마무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봉투 처리에 있다. 3명이 사는 우리 집 봉투는 2리터를 넘으면 곤란하다. 배출 음식쓰레기 양도 모르고 3리터 봉투를 샀다 애를 먹었다. 큰 봉투가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다이소와 생활용품 아웃렛에 자주 가는 편이다.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구경하는 것이 즐겁다. 살림에 필요한 것들 천지다. 과거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는데 이제는 아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는 '빨래건조대'를 하나 샀다. 4년 전에 산 이동 건조대를 몇 번이고 고쳐 썼는데 큰 맘 먹고 새 것을 구입했다. 고장날 것 없는 건조대도 때가 되면 가벼운 양말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법이다.
사실 설거지를 하기 오래 전부터 빨래를 건조대에 널고 걷는 것은 내 몫이었다. 집안 돕는 것으로 맨 먼저 시작한 것이 빨래 말리기와 정리였다.
물론 설거지도 아내가 여전히 돕고 있지만 내 중요한 일과로 자리 잡고 있다. 역할분담도 자연히 생겼다. 나는 밥을 짓고 설거지를, 아내는 국과 반찬을 도맡는다.
은퇴 이후는 가족을 진정으로 돌보는 시간
주방 살림에 재미를 붙이며 진짜 배운 것은 따로 있다. 아무리 잘해도 아내가 바라는 대로 하면 제일 무난하다. 이는 현명한 며느리가 지독한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터득한 '살림 지혜'로 유명하다.
'집안 살림'은 하루 이틀에 배우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것도 없다. 잔소리 하지 않는 미덕이 새삼 중요하다. 내가 설거지 하면 아내는 무조건 칭찬한다. 내가 지금까지 그런대로 버티는 원동력이다.
많은 남자들이 바깥에서 평생 일한 것을 가족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기 급급한데 그것은 자만심에 불과하다. 역할은 언제든 바뀌는 법이다. 은퇴 이후야말로 따뜻한 밥을 함께 하며 가족을 진정 돌볼 시간이다.
하릴없이 밖으로 떠도는 은퇴자들이 많다. 내 주변에도 돌파구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친구들이 있다. 나 또한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들이 가정에서부터 인정받고 보람을 느끼도록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전업 남편'의 하루가 저문다. 오늘 저녁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날이다. 빈 플라스틱 병을 따로 담아 집 앞에 가지런히 놓는다. 가족들이 편하다면 그것이 행복이며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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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전담 두어 달, 은퇴한 60대 살림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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