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벚꽃당초 예상보다 일찍 벚꽃이 피어났다. 현재 제주도에는 유채꽃과 벚꽃, 목련, 조팝나무꽃 등 수많은 봄꽃이 동시에 피어난 상태다.
박순우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만 같은 자연이 실은 촘촘하게 구성된 생명들의 향연이었던 것이다. 춘서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작고 성급하지만 누구보다 빨리 우리에게 봄을 알려주는 초봄의 작은 꽃들에 더 마음이 갔다. 겨우내 죽은 듯 움츠리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저리도 예민하게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다 마침내 제 시기가 되면 활짝 피어나는 것이었구나.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춘서가 헝클어지고 있다. 매화는 아직 자신의 때를 제대로 알고 꽃을 피우는 듯하지만, 그 뒤의 꽃들은 순서를 지키지 않고 저마다 빨리 꽃망울을 터뜨리겠다고 난리다. 급작스러운 기후변화에 꽃들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다.
여왕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벌과 나비의 방문을 받으려면, 하루빨리 꽃을 틔워야 할 것이다. 그러니 산수유, 살구꽃, 개나리, 벚꽃에 조팝나무까지 두서를 모르고 정신없이 피어난다. 이 꽃이 피고 지면, 저 꽃이 피고 지고, 그렇게 하나둘 피고 지면서 비로소 완연한 봄날이 되었던 이전의 봄은 이제 여기 없다.
서서히 다가오던 봄이었는데, 두 손 꼭 모으고 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봄이었는데. 그런 봄이 이제는 너무나 갑자기 찾아온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시나브로 진화하는 생명들에게 이처럼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는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일까. 여기저기 혼란하게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든다. 씁쓸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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