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정누리
불금이다. 기가 막힌 약속이 있다. 1층 입구 앞에서 친구가 손을 흔든다. 둘 다 가방이 두둑하다. 안에 들은 연장 탓이다. 우린 엘리베이터를 탔다. 8층을 누른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스피커가 둥, 둥, 둥. 울려퍼진다. 안에서 괴로운 신음 소리가 들린다. 침을 꿀꺽 삼킨다. 일일권을 끊는다. 문이 열린다. 젊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금요일 저녁, 청춘들이 뜨겁게 근육을 불태우는 곳. 이곳은 헬스장이다.
돌이켜보면, 운동에 투자하지 않는 20대들이 드물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간 친구도, 지방에서 일하는 친구도, 회사를 관두고 새로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도 헬스장은 무조건 다닌다. 과거엔 어떤 옷이 예쁘고, 어떤 화장품이 좋은지 얘기했다면 요새는 레깅스 세일 정보 나누기 바쁘다. 하이힐은 뒷전이고 러닝화 성능 얘기 뿐이다.
뭘까. 언제부터 이리 됐을까? 왜 클럽보다 헬스 클럽이 더 즐겁고, 인스타그램에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이라는 해시태그를 올리지 않으면 허전할까? 오식완·오퇴완·오공완 등의 말은 잘 쓰지도 않는데. 왜 우리는 과거 20대들보다 더 '운동'에 집착할까?
[20대] 시대에 저항하는 근력
우리들의 건배사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언제 나이를 먹었다고, 벌써부터 "건강하자"를 외친다.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우리 책임 져 줄 사람 없어. 나중에 독거노인 되면 비실비실하지 않게 지금부터 몸 관리 잘 해놔야 해." 예전엔 우스갯소리로 얘기했지만, 언제부턴가 말 속에 뼈가 있다.
실제로 1인 가구가 증가했고,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는 기조가 퍼지면서 청년들은 '내 몸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혔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할 맘도 없지만, 희생시키고 싶지도 않은 맘이다. 한마디로 '이기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미용이나 치장 이상의 의미다.
복근도 좋고, 훌륭한 삼각근도 좋다. 하지만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나이 들어서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을 만한 튼튼한 허벅지다. 더군다나 1인 가구는 스스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지갑을 연다. 수입을 누군가와 나눠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20대들은 막연한 저축보다 확실한 몸에 투자한다. 청년들에겐 시대에 저항하는 근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