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와 배경, 그 속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의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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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검찰의 수사지휘가 증가하고,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명백한 법 위반 행위에도 "고의성을 조사하라"는 바람에 근로감독관 업무가 늘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은 사용자에게 과태료 처분을 한 비율이 1.2%에 불과하다는 최근 언론 보도도 이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이념으로 구체화한 시민법 체계에서는 불법행위의 고의나 과실을 범죄인정의 중요한 요건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인간은 온전하게 자유롭지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이런 불평등 속에 개인의 고의로 발생한 피해가 아닌 구조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 사회법 체계가 등장했고, 노동법은 바로 사회법의 대표적인 법이다.
노사관계라는 위계적이고 종속적인 틀에서 사용자의 불법행위 의사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이유로 기업이라는 구조 속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그 구조를 운영하고, 구조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사용자가 불법행위 책임을 지라는 것이 노동법의 오랜 논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법은, 아니 우리나라 노동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다시 그 오랜 노동법의 논의를 되돌리고 있다. 다시 사용자의 고의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나는 노동법이 그런 법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법은 조문 내용만으로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 법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와 배경, 그 속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의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법의 목적에 맞도록 법이 만들어졌는지, 또 법의 목적에 맞게 법이 집행되고 해석되고 있는지까지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온전하게 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온전한 이해를 하라고 법조인이라는 직업이 있고 국민이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
물론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법언(法彦)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노동법을 위반한 사람이 모두 악인이고 그들에게 엄한 단죄가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다. 적어도 노동법을 다루는 집행자들은 어떤 부분에서 사용자의 고의성을 확인해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고의성을 추정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의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혐의없음 처분이 늘어날수록 사용자들은 이것을 '노동법은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라는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일터에서는 노동법 위반으로 인한 갈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법을 그 취지에 맞게 집행하는 것이 범법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법 위반을 줄이고 소위 '건강한' 노사관계를 만드는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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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성 확인 못 하면 '혐의없음'? 노동법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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