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유성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자행한 미라이 학살처럼, 한국군 또한 적잖은 민간인 학살을 베트남에서 자행했다. 대표적으로 1968년 2월 12일 구정 대공세 당시 발생한 퐁니퐁넛 학살과 같은 민간인 학살이 있다.
퐁니퐁넛 학살 당시 한국군 청룡부대에 의해 학살당한 민간인은 총 74명. 그중에는 도저히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으로 간주될 수 없는 1살, 2살짜리 영유아도 포함됐다.
퐁니퐁넛 학살의 경우 국내에서 법적인 소송까지 걸린 사건이라 많은 주목을 받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은 하미마을 학살과 빈호아 학살 그 외에도 여러 학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학살의 특징은 피해자 대다수가 한국군을 지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올해 2월 7일 대한민국 법원이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존재와 피해 사실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는 달리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일 베트남 전쟁 한국군 민간인 학살 피해자 배상판결에 불복 및 항소했다.
당연히 이에 대해, 베트남 외교부는 "베트남의 정책은 과거를 옆으로 밀어놓고 미래를 보고 가자는 것이지만, 이것이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가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의 입장은 항상 '한국군의 학살은 미국의 용병으로서 벌어진 일이기에, 한국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베트남 정부의 입장을 '민간인 학살을 덮어두자'는 것으로 해석하는 건 심각한 오독이다.
피해자의 피해사실과 당사자들의 정서를 세심하게 생각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9일 베트남전 배상판결 항소는 역사적 우를 범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국 정부의 '역사적 우'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항소 사흘 전 한국 정부가 발표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제3자 변제안)' 역시 법원의 판단과 자국의 피해자들의 입장 그리고 자국민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다.
4. 미라이 학살 55년... 그리고 시대역행적 행위
2023년 3월 16일은 미라이 학살이 벌어진 지 정확히 55년이 되는 날이다. 사실 미군의 민간인 학살로 알려진 미라이 학살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벌어진 극히 일부 사건일 뿐이다.
미라이 학살은 미군이 은폐하려다 폭로된 유일한 사건일 뿐, 베트남 전쟁 당시 미라이 학살과 같은 일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 미라이 사건을 은폐한 죄목으로 기소당한 오렌 핸더슨 대령은 1971년 초 기자들에게 "여단 정도 크기의 모든 미군 부대는 어딘가에 각자의 미라이를 숨겨두고 있다"라고 고백했었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 당시 100만 단위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고엽제 살포 그리고 제주4.3사건과 같은 베트콩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군사작전에 의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 민간인 학살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거기다 한국군은 1948년 제주4.3과 여순사건 그리고 한국전쟁 당시 자국민을 대상으로 학살을 저지른 역사가 있다. 거창양민 학살 사건이나 함평양민 학살 사건 등 진실화해조사위원회의 자료에는 이러한 학살만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1980년 광주에선 베트남 전쟁을 통해 군사적 경험을 쌓은 신군부 세력들이 자국민 수천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은 이승만 정부 초기의 학살과 전두환 정권의 광주학살 사이를 연결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이런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역사의 과오를 은폐하는 중이다. 이것은 시대역행적 행위다. 정부를 포함 집권여당은 과거 자신들이 제주4.3과 여순을 어떻게 은폐하고 왜곡했는지 벌써 있었단 말인가. 정부와 집권여당은 이 대목에 대해 정직하게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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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전 베트남에서의 학살을 기억하면서 윤 정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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