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현장 지휘본부의 모니터산불 현장에 드론을 띄워 잔불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오창경
"새벽에 밭에서 들깻대를 태우고 불이 다 꺼진 줄 알고 집으로 들어갔다는구먼. 오후에 보니께 거기서 불이 일어나서 산으로 올라갔댜."
동네 사람들 속에서 이런 말들이 들렸다. 화재 원인의 대부분은 실화와 방심이다.들깻대와 콩대 등은 예전 같으면 불쏘시개가 되어 부엌 아궁이에서 진작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정월 대보름 무렵 마을마다 동화제, 달집 태우기 등을 하는 뜻은 그런 농사의 잔여물을 안전하게 태우기 위한 것이었다. 단지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위하는 의식일뿐만 아니라 농사의 잔여물을 깨끗하게 처리하고 새로 농사를 준비하는 의미도 있었다.
마을의 동화제가 점차 사라지고 불 때는 아궁이도 없어지면서 농촌에서는 농사 잔여물 처리가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산불 감시원들이 다니지 않는 새벽에 밭에서 잔여물들을 태우는 사람들이 생겼다. 옥산면에서 일어난 산불도 새벽에 태운 들깻대에서 숨어있던 불씨가 바람에 발화되어 산으로 올라간 것이 원인이었다.
산불이 발생한 산은 하필이면 부여군에서도 진달래 군락으로 유명한 곳이라 축제도 열고 등산 코스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막 꽃봉오리가 부풀어 오르던 진달래꽃들을 앞으로 몇 년은 못 볼 수 없을 것 같다.
소방 헬기가 날아와 물을 붓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산불은 어느 정도 잡히기 마련이었다. 큰불이 잡히고 나면 소방대원들과 산불 진화대, 의소대원들의 활약이 시작된다. 잔불을 정리하고 불길을 차단하는 손길과 발길이 바빠진다.
하지만 지난주 (충남 부여군) 옥산면 옥녀봉 근처에서 일어난 산불은 소방헬기가 7대가 동원되고 열화상 카메라가 장착된 드론으로 불길이 일어날 만한 곳을 미리 감지해서 인력을 투입해도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봄바람 때문이었다. 바람이 사람들의 모자를 벗기고 옷자락을 들썩이며 지나갈 때마다 산에도 시뻘건 불길이 솟아올랐다.
소방 헬기도 해가 지면 날지를 못하고 야간에는 인력 투입도 어렵기 때문에 해가 있을 때 어느 정도 불길을 잡는 것이 급선무였다. 해는 저물고 불길을 잡던 대원들이 지쳐서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바람도 지쳐서 그만 쉬기를 바랐지만 산불 진화 대원들이 전하는 말은 낙관적이지 않았다.
"그동안 워낙 비가 오지 않았잖유. 낙엽을 긁어다 불 때는 사람두 없구유."
여수(여우) 같은 불과 싸우다 내려온 진화 대원들에게 그날은 생수와 컵라면밖에 해줄 수가 없었다.
"불이 완전히 꺼진 게 아녀서 이런 거 먹기도 편치 않네유."
대원들은 한결같이 패잔병 같았다. 언제 살아날지 모르는 불씨가 대원들의 사기까지 완전히 꺾어 버렸다. 서쪽 하늘에 산불보다 붉은 해가 산 아래로 몸을 숨기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옥산면 의소대원들만 남고 다른 지역의 대원들은 귀가하라는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