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동국사에 2012년 일본 조동종에서 세운 '참회와 사죄의 글' 비석이 서 있다.
손우정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떠나기 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글이 있다.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에 2012년 일본 조동종이 세운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이다. 일본 최대 불교 종파의 하나인 조동종은 1992년 일제 강점기에 자행했던 자신들의 죄악을 고백하고 참회하는 글을 발표한 후, 20년 뒤인 2012년에 이 참사문의 일부를 발췌해 군산 동국사에 최고급 황등석으로 비석을 세웠다.
참사문은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 조동종은"으로 시작하는 참사문은 "탈아입구(脫亞入歐)(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일본 침략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기자 해설)를 내세워 아시아인들과 그들의 문화를 멸시하였으며 일본 국체와 불교에 대한 우월의식에서 일본 문화를 강요하여 민족적 자긍심과 존엄성을 훼손"했고, "아시아 민족 침략의 전쟁에 대해 성스러운 전쟁이라 긍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고 자백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폭거를 범했으며 조선을 종속시키려 했고 결국 한국을 강점함으로써 하나의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우리 종문은 그 첨병이 되어 한민족의 일본 동화를 획책하고 황민화 정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되었다"라고 참회하고,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라고 맹세하고 있다.
일본 조동종의 참사문은 결코 3자 화법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발하고 있으며, 자신의 만행이 구체적 대상, 즉 아시아인, 한국인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빼앗았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또한, 자신들은 종교인이지만, 이것이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거부한다면" 신앙까지도 거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사상이나 신앙을 초월해 훨씬 엄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냉혹하고 처절한 참회와 사죄의 글은 요즘 같은 시대에 외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토대로 삼겠다고 주장한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에 기초해 "역사인식을 심화"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만들고자 한다. 만일 일본 정부가 그동안 조동종 참사문 만큼의 입장이라도 표명했다면, 더 이상의 사죄 요구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약속처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은 '입장을 같이 한다'와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통렬한 참회와 사죄여야 한다. 3·1절에 일장기를 흔든다고, 소녀상 앞에서 철거 시위를 한다고, 유관순 사진을 보고 절도범이라고 한다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참사문은 일본어로도 볼 수 있으니 기시다 총리와 약속한 오므라이스 만찬에서라도 함께 읽어보라. 일본으로 가기 전 동국사에 들려 참사문비를 볼 시간이 없을 테니, 여기 전문을 싣는다. 참사문비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