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1950년대, 1960년대, 1980년대 야인초의 모습.
이준희
그나마 드러난 자료라 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을 통해 야인초의 행적을 더듬다 보면, 1960년대 초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4월 혁명 이후인 1960년 여름 무렵부터 박정희 쿠데타 이후인 1962년 봄 사이에 발표된 야인초의 가사 네 편에서 묘한 흐름이 보이는 것이다. 네 편 모두 대중가요 치고는 상당히 직설적으로 당대의 정치 상황을 표현한 작품이다.
우선 살펴볼 곡 <아 4·19>는 노래를 부른 가수 한정무가 1960년 11월에 사망했으므로 그 전에 만들어졌음이 분명한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4월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용이다.
겨레가 울고 싶은 슬픈 노래를/ 가로맡아 외치다가 쓰러진 학도/ 네 죽음 장하도다 하늘도 땅도 운다/ 화랑도 기상이다 민족의 자랑이다/ 아 4·19 4·19 길이 빛나리
새싹이 트기 전에 피기도 전에/ 모질게도 꺾어 버린 회오리바람/ 네 이름 찬란하다 꽃 같이 별과 같이/ 화랑도 기상이다 민족의 자랑이다/ 아 4·19 4·19 길이 빛나리
들어라 너도 나도 단군의 자손/ 어린 민주 정화불에 흘린 그 피를/ 잊어서 되오리까 그 모습 그 공훈을/ 화랑도 기상이다 민족의 자랑이다/ 아 4·19 4·19 길이 빛나리
(야인초 작사, 허경구 작곡, 한정무·합창단 노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사오입타령> 역시 4월 혁명 관련 작품이며, 비장한 느낌을 주는 <아 4·19>와 달리 몰락한 이승만 정권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 두드러진 가사이다.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곡은 작사자 이름이 필명 야인초 대신 본명 김봉철로 표기되어 있다.
귀하신 몸 나오신다 귀하신 몸 나온다/ 모모 특권 모모 장관 아드님이 나온다/ 색안경 끼고 보면 요지경 속이라네/ 엣다 모르겠다 닐니리 쿵다쿵/ 요즘 같으면 국물도 없다
사사오입 나오신다 사사오입 나온다/ 모모 세력 모모 공작 사사오입 하더니/ 드러난 부정축재 강 건너로 떠나시고/ 엣다 모르겠다 닐니리 쿵다쿵/ 남은 것들은 국물도 없다
사월달은 제 잘못을 버리자는 사자요/ 오월달은 민주 오산 고치자는 오자요/ 유월달 새 건설에 칠월달은 수수께끼/ 엣다 모르겠다 닐니리 쿵다쿵/ 정신 차려요 국물도 없다
(김봉철 작사, 김성근 작곡, 김진희 노래)
1961년 봄에 발표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월의 꽃 한 송이>는 혁명 와중에 희생된 아들을 그리는 어머니 입장에서 만들어진 곡으로, 노래 사이에 아들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대사도 있어 단장의 슬픔을 더욱 짙게 표현했다.
겨레의 슬픈 사연 앞장서서 외치다가/ 한없이 쓰러졌네 어김없이 죽었구나/ 수영아 수영아 대답이 왜 없느냐/ 아 사월의 꽃 한 송이 사월의 꽃 한 송이
(대사) 수영아. 네 죽음을 아껴 우는 어리석은 어머니가 이제야 깨달았구나. 오직 나라에 바치자는 사나이 죽음터를 택한 어린 열사의 어머니 된 감격은 다시 한 번 가슴에 용솟음친다. 수영아, 수영아.
사월달 잔디 위에 우뚝 솟는 추념 탑에/ 엄마는 찾아왔네 보고파서 찾아왔네/ 수영아 수영아 장하다 내 아들아/ 아 사월의 꽃 한 송이 사월의 꽃 한 송이
(야인초 작사, 유금춘 작곡, 시민철 노래)
1960년 여름 이후 1년이 안 되는 동안 4월 혁명 소재 대중가요 가사를 이처럼 세 편이나 썼다는 것은 아무래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 정도라면 혁명 분위기에 편승해 발표해 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확인되는 작품만으로도 세 편이라면 그 배경에 분명 작사가 야인초의 어떤 생각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중가요는 작가의 손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소비 대중의 정서와 욕망을 대변하는 것이라, 거기에 작가의 개인적 성향이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특히 과거 대중가요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야인초처럼 특정 내용으로 쓴 작품을 연이어 발표한 경우는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무슨 뜻에서 그런 작품 활동을 했는지는 당사자가 이미 세상을 떠났는지라 확인할 길이 없다.
쿠데타 이후에 이어지는 난감한 야인초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