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의 사랑>, <청실홍실> 등을 호평한 성악가 한규동의 기고문 일부
동아일보사
노래를 잘 부른다고, 또는 다른 분야 음악가의 호평을 받는다고 성공적인 대중가요 가수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중가요 소비 주체인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부침이 무상한 연예계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 가기는 매우 어렵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송민도의 위상은 그런 점에서도 역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잡지 <삼천리>에서 1957년에 실시한 가수 인기투표 결과를 보면 송민도가 전체 5위, 여성 가수 중에서는 백설희에 이어 2위로 선정되어 있다. 또 이듬해에 잡지 <아리랑>에서 실시한 조사에서는 백설희를 꺾고 전체 2위, 여성 가수 1위로 선정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송민도의 시대를 연 대표작 <나 하나의 사랑>은 1959년 일간지 기사에서 2만 장 정도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송민도의 대중적 인기를 살피는 데에는 충분한 자료가 된다.
한 시절을 풍미한 가수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화려한 성공담이 우선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열흘 붉은 꽃이 없듯 송민도의 활약과 인기도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뚜렷한 하강세에 접어들게 된다. 1970년대 초에 그가 생활 터전을 미국으로 옮긴 것도 그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다한 대중가요 명곡을 남긴 가수 송민도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유효할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중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백수를 누렸다는 점은 노래에서 느끼는 감동에 비하면 그저 소소한 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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