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주년 3.1절인 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에게 서울시민들이 ‘평화인권훈장’을 수여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는 근로정신대 문제를 알린 공로를 인정해 양금덕 할머니에게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서훈후보로 최종 추천했으나, 한일관계 복원을 더두르는 윤석열 정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양금덕 할머니가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권우성
가장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일본의 과거사 인식에 대한 반성 촉구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아마 대한민국이 독립한 뒤 나온 역대 한국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가운데 처음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윤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마 이 부분이 윤 대통령이 이날 기념사를 통해 던지려는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3.1운동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특히, 복합 위기와 심각한 북핵 위협 등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일본이 '일본군위안부'의 존재 사실조차 부인하고 '강제동원 노동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끝났으며, 한국의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엔 눈을 감은 채, 일본을 '침략자'에서 '협력 파트너'로 세탁해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설령 협력 파트너로 할 일이 있더라도 과거에 대한 반성을 촉구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윤 대통령이 한일 갈등 해결의 모델로 강조하는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에도 '과거 직시'와 '미래 지향'이 동전의 앞뒤처럼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의 핵심은 오부치 총리가 한국이 이룬 민주화를 높이 평가하고, 이를 받아서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이 평화헌법을 준수하며 비핵 3원칙과 전수방위 아래서 국제사회에 공헌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입니다. 지금 일본이 과연 그런 것을 준수하고 있습니까. 오히려 '안보 3 문서'를 개정해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본격적으로 체제를 개편하고 있는 게 실상입니다.
일본과 최대 현안인 '강제 동원 노동' 문제의 해결이 가깝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이 문제에 관해 기념사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봅니다. '한국이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일본 쪽의 요구를 이미 전적으로 수용했거나, 민감하니까 피해 가는 것입니다. 저는 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마, 모두 식민지 피해국가의 대통령으로서 할 일은 아닙니다.
기시다 일본 총리에 맞장구 친 대일 인식
이번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내용을 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1월 일본 정기국회 총리 시정방침 연설과 운이 맞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한국에 대해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는 국교 정상화 이후의 우호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긴밀히 의사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전 해에는 단지 '중요한 이웃'이라고 했는데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에 대한 대응에 협력해 나가야 할"이란 수식어를 붙여 띄워준 것이죠.
이번에 윤 대통령은 여기에 더욱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하며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화답한 것이죠.
이러니 일본 쪽의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거의 모든 일본 미디어가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 강제노동 문제에 언급하지 않았으며, 일본을 가치를 공유하는 협력 파트너로 규정했고, 미래 지향을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모두 일본이 바라는 바대로 말한 셈입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함박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