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방한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을 수행하여 외규장각의궤 한 권을 가지고 왔던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사서 자클린 상송. 2009년 필자가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사서 부문 총국장이 되어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방한 당시 의궤 반환에 반대했으며, 귀국 즉시 항의성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유종필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나는 그와의 대화 서두에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차원에서 가벼운 인사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산 TGV를 애용하고 파리 바게트를 좋아한다. 한국은 물 좋기로 유명하지만 에비앙 생수를 비싸게 사서 마실 정도로 프랑스에 우호적이다."
나의 유머 섞인 말에 상대는 예상과 반대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TGV 부분이 그의 아픈 과거사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당시는 외규장각 의궤 반환 전이라서 한국인이 프랑스 사람에게 TGV를 거론하면 경제적 이익만 취하고 약속은 안 지킨 것을 비난하는 것으로 여겨져 콧대 높은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더욱이 자클린 상송은 대통령의 약속을 무산시킨 장본인 아닌가.
아무튼 그로부터 2년 뒤 우여곡절 끝에 의궤 297책이 반환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국립도서관 측의 특별한 반대 행위는 알려진 바 없다. 도대체 '사서의 직업 윤리'가 뭐기에 자클린 상송은 대통령을 비판하며 사표까지 냈을까.
사서(司書)란 한자로 책을 맡아서 관리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한번 입수된 자료는 절대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 사서의 직업 윤리이다. '지식 네비게이터(navigator)'로서 고전에서부터 최신 지식까지 취급하므로 과거엔 노자, 프란시스 베이컨 등 동서양 막론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사서 역할을 했다.
정조 때 왕실도서관인 규장각 내 검서청에서 정약용, 이가환, 유득공, 박제가 등 최고의 실학자들이 검서관(檢書官)이란 직명으로 사서 역할을 했다면 그 위상이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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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반환 막으려 대통령에 맞선 국립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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